TODAY : 포덕166년 2026.02.13 (금)
'정선'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24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전세인의 증손(왼쪽에서 두 번째)과 함께 전세인의 필적을 감정하고 있는 필자 (좌측) 방시학이 살았던 마을 전경 정선의 인물인 방시학(房時學)의 집에 수단소(修單所)가 차려지고, 동학의 역사서가 편찬 발간된다. 그 역사서의 이름이 『도원기서』이다. 그러나 아직 방시학의 집이 어디인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방시학과 함께 활동했고, 또 방시학의 집에서 『도원기서』를 간행할 때 글씨를 쓴 전세인(全世仁)의 손자 되는 ...
송두둑 일원을 흐르는 갈천 장정리 전경 - 송두둑과 사동은 지금은 모두 장정리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강원도 정선에 머물면서 동학의 재기를 꾀하던 해월 신사는 1874년 충청도 단양(丹陽) 사동(寺洞)으로 옮겨간다. 단양 지역으로 옮겨가게 된 계기는 적조암의 스님이 단양 송두둑, 사동일대가 은거하며 지내면서 동학을 다른 지역으로 전파하는 데 유용한 지역이 될 것이라고 조 언한 것에 따른 것이다. 그간 적조암의 스님이 입적한다....
눈에 덮인 적조암 표지석 적조암 표지석과 해월신사 49일 독공비 앞에 선 필자, 눈이 허벅지까지 쌓여 답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정선 유인상의 집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해월 신사는 먼저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기 위하여 49일 기도를 강화하기로 하였다. 이에 사람들에게 물어 지금의 고한(古汗), 태백산맥에있는 갈래사(葛來寺)의 말사인 적조암(寂照庵)을 사람들로부터 소개받고, 이곳을 찾아가 이암자를 지키는 스님인 철수좌(哲首座)에게 ...
무은담 표지판을 촬영하는 필자 무은담 표지석, 해월 신사께서는 무은담에 사는 유인상의 집에 머물며 동학 교단의 재기를 준비한다. 영월에 찾아온 정선 사람 유인상(劉寅常)이 해월 신사를 뵙고 이내 동학에 입도했다. 해월신사께서 신미년 이필제 난을 겪고 영월 직동으로 숨어들어 온 이후, 지역적으로 가까운 정선의 교도들은 해월 신사와 지속적으로 왕래를 하게 된다. 이러할 때 직동을 방문한 유인상을 해월 신사께서 직접 포덕하였고, 이후 ...
서운포(도훈 윤석산)는 지난 10월 17일부터 18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강원도 정선 일대의 동학 유적지를 순례했다. 이번 답사에는 서울교구 교인을 중심으로 여주교구와 인근 교구 교인 30여 명이 함께했다. 답사단이 아리랑센터 공연장 로비에서 뮤지컬 출연자들과 함께 단체사진을 남겼다. 첫날 정오 무렵, 정선 현지에 도착한 답사단은 고종호 전 정선문화원 사무국장의 안내로 황기족발과 정선의 향토 음식인 콧등치기국수로 점심 식사를 했다. 이후 5일장이 열리는 정선아리랑시장을 방...
나이 마흔에, 서울살이를 끝내고 강원도 홍천 서석면에 새로 둥지를 튼 권소영 대표는 원래 동학과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프랑스 출장길, 관계자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친 프랑스혁명을 뛰어넘어, 세상 모든 존재의 존엄성을 인정한 동학사상에 대해 현지인들에게 설파한 뒤, 그다음 날 회의가 믿기지 않을 만큼 술술 풀렸던 경험이 동학과의 인연이라면 인연일 터였다. 한데 2007년, 그가 살러 온 홍천 서석면 풍암리가 동학혁명 전적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 인연이 오려는 길이었구나.” 하고 ...
적조암에서 하늘을 훔치다 함백산 그늘 깊은 곳, 눈 쌓인 적조암의 토굴에 관솔불이 흔들렸다. 그곳에 해월이 오시니 하늘과 땅이 한 호흡으로 고요해지고, 도접주 유시헌은 그 뒤를 따랐다. 세상은 어지럽고, 사람의 길은 잿빛으로 흐르던 때, 그들은 오직 기도로 길을 찾으려 했다. “하늘은 사람 안에 계시니 스스로 한울을 모시라.” 해월의 음성이 바위 틈새로 스며들자 산조차 숨을 죽였다. 유시헌은 무릎을 꿇고 세상과의 인연을 내려놓았다. 그의 이마 위로 내리는 눈발이 참회의 눈물인 양...
제1회 동학농민혁명 청산총기포령 기념 가념축제가 오는 11월 1일(토) 충북 옥천군 청산면 일원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충북 지역 최초의 봉기지로 알려진 청산총기포령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동학농민군의 자주·평등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다. 제1회 동학농민혁명 청산총기포령 기념축제 안내 웹포스터 오전, ‘총기포령 재현’으로 역사의 현장을 되살린다 1부 행사는 오전 9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청산면 문바위골(청산면 한국리 223-5)에서 ...
저는 충북 진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교당에 다녔습니다. 뜻도 모른 채 주문을 외우고,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신앙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살아오며 많은 굽이길을 지났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서울교구에서 활동하며 신앙의 기쁨을 배웠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사인여천’, ‘성·경·신’의 가르침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습니다. 때로는 흔들렸지만, 끝내 이 길을 붙들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늘 갈증이 있었습니다. 스승님들의 발자취를 더 가까이 만나고 싶다는 갈증이었습니다...
동학혁명에 대한 교단의 인식 천도교의 동학혁명에 대한 인식은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였다. 동학혁명 직후에는 ‘반역’ 또는 ‘역적’이라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고향을 등지거나 은신생활을 통해 목숨을 유지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동학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고, 갑진개화운동과 3.1운동 등 일제강점기 민족운동의 주제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단에서는 동학혁명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동학혁명과 관련된 가장 앞선 기록은 『천도교회월보』 116호에 게재된 「천도교 61년 연보」의 ‘포덕 35년조’가 아닌가 한...
『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천도교신문에서는 시인이자 숲 해설가인 이시백 동덕의 생활 명상 글과 라명재 송탄교구장이 엄선한 동학 경전 구절을 함께 엮어, ...
포덕 167년 2월 8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 "대신사의 순도와 우리의 길" 운암 오제운 신태인교구장
나는 월요일만 되면 늦잠 자는 날이라 하루 전날부터 마음이 편합니다. 전주한옥마을은 국내외 유명 관광지라 오래전부터 토요일 일요일은 쉬지 않고 근무를 합니다. 동학혁명기념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