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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악’의 길 개척하며 천도교 음악의 새 지평을 연 늦깎이 국악 작곡가 정수당(正守堂) 김정희 동덕지난 8월 14일 제162주년 지일기념식. 의례를 마친 뒤 무대에 오른 문화공연은 많은 교인에게 오래 남는 감동을 주었다. 판소리 〈흥보가〉의 흥에 이어, 『해월신사 법설』을 가사로 삼은 창작곡 〈수심정기〉, 천덕송 가운데 민족적 선율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 〈영부의 노래〉가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온 장내가 함께 부른 〈진도아리랑〉이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이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한 이는 북한 토속민요 연구와 천덕송 창작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 정수당(正守堂) 김정희 동덕(영등포교구)이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뒤늦은 음악 공부, 육아와 생계를 모두 감당해야 했던 삶의 조건 속에서도, “언젠가는 작곡가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다짐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다. 북한 민요 연구와 동학 천도교 음악 연구, 천덕송에 대한 고민과 창작은 그에게 단순한 직업을 넘어 ‘천도교인으로서의 삶’ 그 자체였다. 김정희 동덕이 작곡가로서 젊은 세대의 천도교인에게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천덕송의 내일에 관해 그의 인생사와 함께 들어본다.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 되는 동귀일체, 그것이 천도교 음악” 문. 제162주년 지일기념식 후 문화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셨습니다. 의례 이후 교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문화적 장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기획 단계에서 가장 고민하신 부분은 무엇이었으며, 천도교 정신을 무대 위에 어떻게 담아내고자 하셨는지요? 답. 천도교가 ‘민족종교’라면 음악 문화에서도 그 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첫 곡은 우리 전통 성악의 대표 장르인 판소리, 그 가운데서도 가장 흥겹고 재미있는 〈흥보가〉의 ‘박타령’을 골랐습니다. 두 번째는 지일기념일의 의미를 살려 『해월신사 법설』 〈수심정기〉 일부를 가사로 삼고, 중모리장단에 창부타령조 선율을 입혀 제가 작곡한 곡 〈수심정기〉를 올렸고요, 마지막 곡은 천덕송 중에서 전통 선율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보는 〈영부의 노래〉를 선택했습니다. 앵콜곡은 누구나 함께 부를 수 있는 〈진도아리랑〉으로 마무리했고요. 무대를 만들면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건 ‘동귀일체(同歸一體)’였습니다. 연주자는 연주만 하고 관객은 듣기만 하는 구조가 아니라, 추임새도 넣고 같이 따라 부르면서 연주자와 청중이 한마음이 되는 공연 말입니다. 우리 전통음악은 본래 그런 문화였고, 저는 그 전통이야말로 천도교의 시천주, 사인여천, 동귀일체 정신과도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엄마와 작곡가, 어린 시절 두 가지 꿈이 끝내 저를 여기까지 데려왔죠” 문. 선생님은 흔히 말하는 정규 코스를 밟은 음악인이라기보다, 여러모로 우회로를 걷다가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음악과의 인연을 간단히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답. 제가 기억하기로는 열 살 무렵 제 인생 목표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좋은 엄마가 되는 것, 두 번째는 작곡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어려서부터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에 초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세광 애창 700곡집』이라는 노래책을 사 오셨고, 제게 악보 읽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그 책에 수록된 세계 각국의 동요·민요·가곡 악보를 보며 하루 종일 부르고 또 부르며 놀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 언어의 발음도 익히게 되었고, 악보를 보고 부르거나, 들은 멜로디를 악보로 옮기는 일이 제게 즐거운 놀이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 음악 인생의 첫 출발점이었고, 이후 어머니께서는 어려운 형편에도 1년 동안 피아노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피아노 외의 음악 공부는 모두 독학이었지요. 그러나 음악은 저에게 늘 ‘해야 하는 공부’가 아니라 ‘멈출 수 없는 재미’였습니다. IMF, 해고, 재취업 실패… 그렇다면 지금은 공부할 시간! 문. 스무 살에는 공대를 선택하셨다가, IMF 시기에는 음악학원 교사로 일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음악 전공을 결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답. 삶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더군요. 대학에서는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이후에는 공장에도 다녔습니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은 뒤에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정시에 출퇴근을 해야 하는 맞벌이를 하기가 어렵게 되어, 음악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격증이 없어 감사에 걸려 해고됐고, IMF가 겹치면서 남편의 직장도 불안정해졌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일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때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공부에 쓰자.” 마침 정년퇴직하신 친정어머니께서 연금 일부를 일시불로 받아 제게 보태주셨고, 그 돈으로 부산예술대학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작곡을 전공하려면 작곡과 피아노를 둘 다 배워야 했고, 작곡 레슨비가 너무 비쌌기에, 아는 언니에게 한 달에 일정액을 드리며 1년 반 정도 피아노 레슨을 받아서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한 학기 지난 후에 작곡 전공으로 바꾸었지요. 그때까지 화성법, 대위법, 음악사 등은 모두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는 육아와 살림, 공부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기에 참 고단했습니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도 못 말린다”는 말처럼, 자발적으로 선택한 공부였기에 버틸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제가 나중에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자발성’의 힘을 몸으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토속민요에서 발견한, 난생처음 들어본 독창적인 아름다움 문. 선생님의 대표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북한 토속민요입니다. 이 분야를 본격적으로 파고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답. 국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던 시기에 황해도 토속민요인 <풍구소리>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 선율이 너무 좋아서 “이 곡으로 작품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북한 토속민요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석사 논문이 단 두 편뿐이더군요. 황해도 한 편, 함경도 한 편. 평안도 토속민요에 대한 논문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때 ‘이건 보물창고가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토속민요는 한 집단의 음악적 모국어이자 삶의 기록인데, 분단과 세월 탓에 절반이 통째로 공백 상태로 남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북한 토속민요부터 연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한국민요대전』을 집대성하신 최상일 PD님을 만난 일이었습니다. 특강 자리에서 인사를 드리며 제가 “북한 토속민요를 석‧박사 과정에서 연구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 “음원은 어디서 구할 건데?”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이주민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모아보겠다”고 하니, “MBC에 이미 수천 곡이 들어와 있는데?”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구하신 북한 현지 음원을 정리하고 계셨던 겁니다. 남북 정상회담을 기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엮은『북한 민요 작품집』 문. 그렇게 연구하신 북한 민요와 창작이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하나의 작품집으로 묶였지요? 답. 북한 민요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2002년입니다. 그 이후로 논문을 쓰는 한편, 북한 토속민요 선율을 바탕으로 곡도 꾸준히 써왔습니다. 그러던 중 2018년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리는 걸 보며 ‘이제까지 써온 곡들을 모아 한반도의 평화와 상생을 기원하는 첫 작품집을 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때까지 북한 토속민요를 바탕으로 한 곡이 일곱 곡 있었는데, 정상회담을 기념하는 의미로 한 곡을 더 만들어 여덟 곡짜리 작품집을 완성했습니다. 연주 시간으로 환산하면 65분이 조금 넘는 분량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첫 작품집이자 지금까지도 유일한 작품집입니다. 북한 민요에는 정말 독창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들어본 어느 나라 노래와도 다른, 우리만의 음조직과 장단, 정서가 살아 있습니다. 그 음악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불러내는 작업은 남과 북을 잇는 다리이자, 동학 천도교가 지향해온 만민평등과 평화의 이상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연기연>을 읽고 변증법이 떠올라 무척 놀라웠습니다” 문. 천도교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답. 부산예술대학에 다닐 때 <인간과 종교>라는 교양 과목이 있었습니다. 첫 수업 시간에 김용휘 교수님께서 “종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라고 물으셨고, 제가 유일하게 손을 들었습니다. “종교가 없어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성인들이 남긴 책도 있고, 양심에 비추어도 도리를 알 수 있는데 왜 꼭 종교가 필요한가”라는 것이 제 생각이었지요. 그런 제가 동학 천도교 교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건 바로 그 수업을 맡으셨던 김용휘 선생님, 그리고 같은 학교 교수님이셨던 김춘성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입니다. 『동경대전』의 <불연기연(不然其然)>을 처음 공부하게 되었을 때 무척 놀랐습니다. “이게 변증법 아닌가? 헤겔 철학이 들어오기 훨씬 전인 19세기 중엽 조선에 이미 이런 사유가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이었지요. 이어서 해월 신사의 삼경(三敬) 사상, 이천식천(以天食天), 향아설위(向我設位) 같은 가르침을 읽으면서, 제가 평소에 중요하게 여겨온 좌우명들이 이 교리 안에 다 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경물(敬物)’ 사상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물티슈나 일회용 기저귀를 거의 쓰지 않았고, 화악산수도원에서 화장실 쓰레기를 태우는 일을 하면서 일회용품이 남기는 잔해와 독성의 문제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만물을 공경하라’는 삼경 사상과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용담정 수련이었습니다. 당시 제 삶은 여러모로 바닥을 치고 있었고,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수련을 하면 마음에 힘이 생긴다”고 권유하셔서 겨울방학 기간에 2박 3일 용담정 수련에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그 시간 동안 비록 특별한 체험은 없었지만 ‘이 길을 계속 가면 내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련 둘째 날 “입교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마침 제 생일 바로 다음 날이 제 입교일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천도교인으로서의 삶’을 저의 중심에 두게 되었습니다. <불연기연> 등 네 곡의 천덕송으로 은사님 환갑을 축하하다 문. 천덕송 창작 역시 선생님의 작업 가운데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특히 포덕 157년(2016) 은사이자 전교인이신 김춘성 선생님의 회갑을 맞아 네 곡의 천덕송을 작곡해 선물하셨는데요, 그 사연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답. 박사학위 논문을 마치고 나니 “전교인이 김춘성 선생님이신데, 나는 아직 선생님께 밥 한 끼 제대로 대접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의 환갑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선생님께 가장 기쁜 선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천덕송’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한울님께 마음속으로 “김춘성 선생님께 드릴 천덕송을 만들고자 하니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경전을 펼쳤더니, 맨 먼저 <불연기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첫 곡을 『동경대전』의 <불연기연>으로 정했고, 두 번째 곡은 힘든 시기에 제가 가장 많이 읽었던 대신사님의 <시문>, 세 번째 곡은 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 집약된 〈수심정기〉, 네 번째 곡은 『의암성사 법설』 가운데 〈진심불염〉으로 정했습니다. 집에서는 집중하기가 어려워 노트북과 경전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작곡을 했습니다. 한 달 동안 네 곡을 작곡하고, 국악기 편성으로 반주를 붙인 후 연주자를 섭외하고, 녹음과 편집, 믹싱, 마스터링까지 마쳤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너무 촉박한 일정이라 아쉬움도 남지만, 한울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추석 전날, 인사동에서 선생님과 단둘이 식사를 한 뒤 찻집에서 “선생님, 환갑 선물입니다.” 하고 그 음원을 들려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 무척 기뻐하셨고, 그 순간 저 역시 “천덕송과 천도교 음악 문화에 내 삶을 더 깊이 바쳐야겠다”는 마음을 다시금 다지게 되었습니다. 네 곡 가운데 특히 〈시문〉과 〈진심불염〉은 지금도 제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입니다. "천덕송은 동귀일체를 이루는 노래이자, 평등·평화·생명을 담아내는 노래" 문. 음악 연구자이자 작곡가의 시선에서 볼 때 천덕송이 지닌 정신적·예술적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답.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힘이 있습니다. 말이나 글처럼 논리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영혼의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느 집단이든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공동체 의식을 다져왔습니다. 학교에는 교가가 있고, 군대에는 군가가 있고, 국가에는 국가(國歌)가 있듯이 말입니다. 오래전부터 농부들은 들노래를 부르며 함께 땅을 갈았고, 어부들은 뱃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잡았습니다. 다투던 사람들도 같이 노래하며 일하는 동안에는 한마음이 되었지요. 천덕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천덕송을 부르는 것은 결국 동귀일체(同歸一體)를 이루고자 함입니다. 천덕송은 천덕사은을 노래하고, 동귀일체를 추구하며, 신심을 돈독히 하고, 깨달음의 기쁨을 표현하는 종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동시에 약자와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평등과 평화에 기여하고, 어렵게 이룩한 민주주의의 열매를 더욱 공고히 하는 사회·역사적 역할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냉전과 분단을 넘어 평화로 나아가는 길에 힘을 보태는 노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외되고 메마른 현대인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따뜻한 감성과 영성을 일깨우는 문화・예술적 역할 역시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모든 요소를 아우르는 것이 천덕송의 정신적·예술적 본질이라고 봅니다. 일본 노래에서 온 곡들은 이제 보내줄 때… 21세기 가치로 새 천덕송 지어야 문. 오늘날 교단 내부에서도 “천덕송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와 호흡하는 새 천덕송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답. 포덕 159년(2018), 『신인간』에 〈천덕송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현재 부르고 있는 천덕송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짚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가장 심각한 점은 몇몇 곡의 선율이 일본 노래에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목적풀이〉는 일본의 〈철도창가〉에 노랫말만 바꾼 곡이고, 〈검가(기 2)〉와 〈배 떠나간다〉는 일본 특유의 ‘요나누키’ 단음계로 된 일본풍 노래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민족을 침탈하고 동학군을 학살했던 역사가 분명한데, 그런 노래들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오래 불러왔으니까 계속 부른다”는 태도로 유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사 측면에서도 교리·교사와 어긋나는 표현, 어법에 맞지 않거나 뜻이 모호한 구절, 품위가 떨어지는 내용, 현재 맞춤법, 띄어쓰기와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정리가 필요합니다. 운율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 전통 시가의 기본 운율은 대체로 3·4조, 4·4조에 2음보인데, 7·5조에 3음보라는 형식은 일본 전통 시가에서 온 것입니다. 이런 부분은 우리 고유의 리듬과 말맛을 살릴 수 있도록 바로잡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오늘의 천덕송은 21세기 인류가 함께 고민하는 가치들―생태·문화다양성, 상생, 인권, 연대, 복지, 평등, 평화 등―을 적극 반영해야 합니다. 이런 가치들은 수운 대신사, 해월 신사, 의암 성사가 가르쳐주신 바와도 직결됩니다. 동시에 전통 양식과 민족적 요소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도교 음악 문화의 정체성을 세우면서도 다양성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방향에서 ‘내일의 천덕송’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학 천도교의 서사와 민요의 서정을 만나게 하는 것이 제 작업" 문. 선생님은 북한 민요뿐 아니라 경기·서도·남도 등 다양한 민요를 연구하고 창작에 활용해오셨습니다. 민요 속에서 천도교 정신을 어떻게 발견하고 재현해내고 계신지,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해주신다면요? 답. 제가 2016년에 작곡한 네 곡의 천덕송 가운데, 『의암성사 법설』을 가사로 삼은 〈진심불염〉은 전남 영광군 논매는소리 〈문여가〉의 선율을 주제로 삼아 만든 곡입니다. 두레 공동체가 함께 논을 매면서 부르던 그 노래에는 꿋꿋하고 유장한 선율, 서로를 북돋는 공동체 정서가 잘 녹아 있습니다. 저는 그 선율에서 의암 성사의 기상을 떠올렸고, 그래서 그 음형을 〈진심불염〉의 주제 선율로 삼았습니다. 민요를 바탕으로 새 천덕송을 짓는 작업이 제 첫 번째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연구 작업입니다. 포덕 162년(2021)에는 ‘동학농민혁명의 음악 양상과 문화콘텐츠로서의 잠재성’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한국민요대전』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새야 새야〉 외에도 여섯 가지 다른 선율의 〈새야 새야〉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나 천도교와 관련된 노래는 그 수가 많지 않지만, 넓은 지역에 퍼져 있고, 비슷한 가사가 <논매는 소리>, <무덤 다지는 소리>, <정월 대보름 새 쫓는 소리>, <둥당애타령> 등 여러 갈래 민요에서 나타납니다. 이런 사례들을 찾아내고 분석해 논문으로 공유하는 것이 제 두 번째 작업입니다. 동학 천도교의 주체도 백성이고, 민요의 주체도 백성입니다. 저는 동학 천도교의 서사와 민요의 서정을 만나게 하고, 여기에 ‘지금 이곳’의 지향과 정서를 담아 예술적 숨결을 불어넣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민요는 역사성과 지역성, 시대성과 정체성을 모두 갖춘 새로운 천도교 음악 문화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장구·단소와 함께 부르는 천덕송, 어린이에게는 ‘진짜 전래동요’를! 문. 앞으로 교단의 주요 의례나 행사에 민요적 요소와 국악을 더 깊이 접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구상을 하고 계실 줄 압니다. 민요의 서정성과 공동체성이 교단 문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요? 답. 우선 우리 어린이들에게 ‘진짜 전래동요’를 돌려주고 싶습니다. 널리 알려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두껍아 두껍아〉, 〈쎄쎄쎄〉, 〈여우야 여우야〉 같은 노래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 일본 와라베우타(동요)입니다. 와라베우타는 대부분 2분박, 2/4나 4/4 박자가 많고, 특정 음으로 종지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반면 한국 전래동요는 3분박이 많고, 12/8 박자가 가장 흔합니다. 이런 차이를 바로잡기 위해 포덕 162년(2021) 서울우리소리박물관에서 『전래동요 자료집』과 음원을 제작해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런 ‘진짜 전래동요’를 천도교 어린이들이 널리 부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천덕송 가운데 〈영부의 노래〉, 〈지일기념가〉처럼 민요풍으로 작곡된 곡들은 피아노 대신 장구와 단소로 반주하면 훨씬 흥겹습니다. 장구와 단소는 이미 초등 교과 과정에도 들어가 있으니, 역량이 되는 교구에서는 유소년부를 활성화해 ‘장구·단소로 천덕송 연주하기’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민요라는 보물창고를 잘 활용해 새 천덕송을 작곡하는 작업도 병행할 수 있겠지요. 이번 지일기념식에서처럼 교단의 각종 의식과 행사에 국악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중앙총부와 각 교구의 음악 문화도 점차 뚜렷한 정체성을 갖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제대로 된 우리 문화를 만드는 일이 곧 ‘천도교인의 길’ 문. 안익태 애국가 문제 제기, 북한 민요 연구, 천도교 음악 연구 등 선생님이 다뤄온 주제들은 기존 음악계가 쉽게 손대지 않는 어려운 분야였습니다. 이런 작업들이 결국 천도교 음악과 문화적 자산으로 어떻게 연결될지요? 답. 한국 근대사에서 천도교는 3‧1운동을 비롯한 항일운동뿐 아니라 『천도교회월보』, 『개벽』, 『농민』, 『신여성』, 『어린이』 등 다양한 잡지를 통해 대중의 의식과 문화를 선도한 주역이었습니다. 천일기념식, 어린이날 행사 등도 온 나라가 주목하는 문화행사였지요. 스승님들은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제가 하는 작업들은 제가 속한 영역에서 잘못된 것들을 하나씩 바로잡으면서, 앞으로의 우리 문화를 ‘제대로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색이 짙은 곡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우리 정서와 양식에 기반한 새로운 천덕송을 짓고, 한국적 색채와 천도교 정신이 어우러진 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올리고, 동학·천도교와 관련된 음악 문화를 학문적으로 정리해나가는 일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결국 이 모든 작업은 ‘천도교인으로서의 행위’입니다. 제가 걸어온 길과 그 결과물들이 조금이라도 천도교의 문화자산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노래만큼 우리 노래도, 남의 학문만큼 우리 자신도 연구합시다” 문. 오늘날의 천도교인, 특히 젊은 세대 교인들에게 음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요? 답. 세 가지 정도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남의 노래를 듣고 부르는 만큼 우리 자신의 노래도 듣고 부르자는 것입니다. K-팝이 세계를 누비는 시대지만, 그 바탕에는 우리의 민요와 전통음악, 그리고 동학 천도교의 노래들이 있습니다. 천덕송과 우리 민요를 사랑하는 마음이 곧 천도교 음악의 미래를 여는 힘이라고 믿습니다. 둘째, 남의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는 만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연구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동・서양 철학과 음악을 두루 섭렵하면서도, 결국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지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준 것이 동학 교리와 우리 음악이라고 느꼈습니다. 『동경대전』의 불연기연, 삼경 사상, 특히 경물 사상은 오늘날 생태위기와 인류 문명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큰 자산입니다. 셋째,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이 천도교인의 것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제 삶을 돌아볼 때, 특별한 재능이라기보다 물욕이 적고, 의지가 강하고,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붙드는 성향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성향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준 것이 바로 천도교 신앙과 수련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남북한 민요 연구를 더 깊게 이어가고, 새로운 천덕송을 작곡하고, 제자들을 길러내며, 천도교 음악 문화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남의 노래만큼 우리 노래를, 남의 학문만큼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연구할 때 천도교의 노래와 문화도 다시 한번 꽃피울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행 노은정 전 편집장) 김정희 동덕이 작곡한 <불연기연> 악보와 가사 및 유튜브로 감상하기 https://www.chondogyo.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975 김정희 동덕이 작곡한 <시문> 악보와 가사 및 유튜브로 감상하기 https://www.chondogyo.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976 김정희 동덕이 작곡한 <수심정기> 악보와 가사 및 유튜브로 감상하기 https://www.chondogyo.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977 김정희 동덕이 작곡한 <진심불염> 악보와 가사 및 유튜브로 감상하기 https://www.chondogyo.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978 -
‘진주소년회 105회 기념식’ 천도교 진주교구 후원으로 개최천도교 진주교구가 후원하고 ㈔동학소년회가 주최·주관한 진주소년회 105주년 기념식이 지난 2일 오전 진주시 중안동 진주교육지원청 앞마당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진주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 관계자, 천도교 교인, 일반 시민 등 40여 명이 참석해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천도교 진주교구, 소년운동의 정신 되새겨 기념식은 ▲기념사 ▲동학소년회 선언문 낭독 ▲독립만세 퍼포먼스 등으로 진행됐다. 정의적 천도교 진주교구장은 기념사에서 “오늘날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보장된 나라에서 원하는 꿈을 펼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며, “그러나 이 자유는 평화를 열망한 선열들의 피와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잊지 말고, 감사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의적 교구장은 “천도교의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을 가슴에 새기고, 어린이와 청소년이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며 세상을 밝히는 한울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진주소년회, 전국 소년운동의 뿌리 진주소년회는 1921년 5월 1일 진주에서 조직된 국내 최초의 소년운동 단체다. 이 단체는 전국 소년운동의 시작이자 어린이날 제정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정신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며, 교육과 계몽 활동을 전개해왔다. 현재 ㈔동학소년회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역사의식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진주시와 진주교육지원청 차원에서도 진주소년회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 계승할 수 있는 행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 기념식은 천도교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성장과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리였으며, 동학소년회가 걸어온 100년의 발자취가 새로운 세대에게 이어지는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 사진제공 동학소년회 -
한울인성캠프, 청소년 인성 함양과 공동체 가치 확산의 장지난 9월 6일~7일까지 부산 금련산청소년수련원에서 천도교 청년회가 주관하는 ‘한울인성캠프’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1박 2일간 진행됐다. 이번 캠프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생명존중 사상과 소파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인권 운동 정신을 계승해 미래세대가 건강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다. 시천주와 인내천 사상으로 배우는 공동체 정신 한울인성캠프는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고 자존감을 높이며, ‘시천주(侍天主)’와 ‘인내천(人乃天)’의 정신을 바탕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배우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단순한 체험 활동을 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이 꿈과 희망을 키우고 장차 지역사회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천도교청년회는 전국에서 참가자를 모집하고, 과거 캠프에 참가했던 경험이 있는 대학생들이 스태프로 참여해 후배 세대를 돕는 ‘세대 잇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를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는 인성 교육의 장을 마련했다. 천도교 청년회는 “이번 캠프를 통해 참가자들이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역사회가 모두 함께 존중받아야 할 공동체임을 깨닫기를 바란다”며, “특히 학교폭력, 따돌림 등 현실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극복하는 힘을 기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성장의 무대, 자발적 참여와 체험 중심 운영 이번 캠프는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공동체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첫날은 아이스브레이킹 활동으로 서로의 어색함을 풀고 친밀감을 형성한 뒤, 본격적인 진로 특강으로 이어졌다. 진로특강 <하늘 같은 나, 하늘 같은 너> 진로특강은 저학년과 고학년 두 팀으로 나눠어 진행되었다. 첫 번째 시간은 ‘하늘 같은 나, 하늘 같은 너 – 나와 너를 소중히 여기는 삶’을 주제로 임우남 부산남부교구장이 강연을 진행했다. 임 교구장은 “나는 한울님”이라는 주제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일깨워주었다. 먼저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온 유전자의 의미와 역사를 이야기하며, “나”라는 존재가 수많은 세대와 인류의 역사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우리는 직접 만나지 못한 조상들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그 생명은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곧 한울님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시각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종이를 찢고 태우는 활동을 통해, 비록 형태는 사라져도 그 흔적과 기운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 안에 무한한 가능성과 힘이 깃들어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또한 젖소 ‘로자’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마음의 중요성을 전했으며, 꽃밭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이미 소중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강의는 “내 속에는 수많은 한울님이 살아 계시며,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스스로를 격려하는 삶이 곧 한울님을 드러내는 길”이라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진로특강 <인내천 사상과 인간 존중의 삶> 고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는 김대석 동천교구장이 ‘인내천 사상 기반 인간존중 이야기 –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김 교구장은 “우리 모두는 하늘과 같은 존귀한 존재”라며, 청소년들에게 인내천 사상의 핵심 가치를 소개하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스스로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올바른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인생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또한, 친구와 이웃, 사회를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속의 나’를 강조했다.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으로 배움 확장 강연 외에도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천연염색 체험을 통해 자연과 환경의 소중함을 배우고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했으며, 실내 암벽등반과 피구 경기를 통해 도전정신과 협동심을 키웠다. 또한, 마술 공연으로 웃음과 감동을 함께 나누었으며, 마지막 날에는 참가자들이 직접 촬영·편집한 숏폼 영상 상영회가 열려 캠프의 추억을 함께 나눴다. 청소년들의 변화와 다짐 캠프를 마친 청소년들은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며 공동체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참가자들은 “함께 웃고, 배우고, 도전하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다”며, “앞으로 친구와 가족,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천도교 청년회는 앞으로도 한울인성캠프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청소년들이 인내천 정신을 체득하고, 미래세대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청소년 인성 교육의 확산을 통해 건강한 사회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천도교대학생단 조화정 단장은 "이번 <한울나눔터-한울인성캠프>에서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였습니다. 각 지역에서 부산까지 기차와 버스로 이동하느라 아이들에게는 조금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재미있고 알차게 뛰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한울인성캠프는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해가는 성장의 무대가 되었다. 한울인성캠프에 함께한 한울님들의 한마디 김민경 :이번 캠프에서 기도식 경전봉독을 해서 참 뿌듯했어요. 저는 이번에 마술 공연이 참 재미있었어요. 너무 신기했어요. 여기서 만난 언니들과 보낸 시간도 좋았어요. 또 이런 캠프가 있으면 좋겠어요. 박민성 : 천도교에서 하는 캠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서울로 3박 4일 하늘 캠프 할 때 가보았어요. 캠프에서는 형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봉황각에서 손병희 선생님이 3.1 운동을 계획하신 역사나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랑스러웠어요. 이번 캠프에는 암벽등반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서 너무너무 신나요 조우혁, 강기윤, 김상휘 : 동천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시일식이 낯설지 않았어요. 매주 시일식을 하거든요. 고등학교 진학을 동천고등학교로 하게 되면서 철학, 종교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수련회에는 처음 와보았는데, 천도교 수련을 체험하면서 더 느껴보고 싶어요. 천도교가 주는 연대감과 소속감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 것 같아요. 참 신기하고 신비로워요. 천도교를 알게 되면서 천도교인들은 어떤 사람일까 상상해보았는데,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조금 더 가깝게 느껴져요. 저희 학교는 산 밑에 있어서 조용하고 공부하기에는 참 좋아요. 벌레도 많고 학교에 올라가는 길이 좀 힘들지만요(웃음) 이번 수련회에서 천도교가 어떤 종교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학교 안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경험하게 되었어요. 박김한울 : KTX타고 오는 길이 좀 멀어서 힘들었지만 친구들이 간다고 해서 함께하는 시간은 참 즐거워요. 천도교에 대해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일은 약간 사주면 먹고, 안 사주면 안 먹는 민트초코 같은 느낌이에요. 물어보면 알려주는데, 안 물어보면 굳이 알려주지 않는 그런 느낌요. 그런데 천도교를 해서 좋은 점은 대교당에 나가면 짜장면을 자주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웃음) 그리고 저희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신 춘암 박인호 상사님이신데 정말 멋진 분이신 것 같아요. 정수민 : 제가 대교당에서 했던 어린이날 행사 때 한복을 입고 '양천주'를 읽었어요. 그리고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천도교인이신데요. 가끔 따라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친구들에게는 천도교를 설명하기가 좀 어려워요. 이번에 한울인성캠프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너무 좋아요. 여기서 알게 된 언니랑도 친해졌어요. 김교영 : 바다를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마술쇼도 재미있었어요. 어린이 시일식 할 때보다 훨씬 좋았어요. 친구들이랑 늦게까지 놀았던 것도 너무 신났고요. 피자랑 치킨을 먹을 수 있어서도 좋았어요. 천연염색 수건 만들기 체험을 했는데 할머니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아요. 신지아 : 저는 아기 때부터 천도교에 다녔어요. 엄마, 아빠, 할머니 따라서요. 오늘 이 캠프에 와서 친구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어서 너무 좋았어요. 이번 캠프를 마치고 돌아가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자랑할 거예요. 이지후 : 저는 부산에서 왔어요. 13살입니다. 부산시교구에 나가고 있어요. 천도교에 다니면서 천도교에서는 사람과 생물, 사물 모든 것을 한울님으로 모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번 캠프에서 친구들 만나서 좋고 이 친구들은 또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될 것 같아요. 김경진, 김하윤, 김지후 : 조금 멀어서 오는 게 힘들었지만 참 기대가 컸어요. 마술 공연도 그렇고 체험프로그램도 재미있었어요. 암벽등반 체험이랑 숏폼 만드는 것도요. 여기는 숙제도 없고 너무 좋아요. 피자랑 치킨을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친구들이 생긴 것도 좋고요. -
전성환 경청통합수석, 중앙총부 교령사 예방포덕 166(2025)년 9월 3일, 대통령실 전성환 경청통합수석이 천도교중앙총부 교령사를 예방해 박인준 교령을 비롯한 중앙총부 교역자들과 환담을 나누고 종교 정책의 형평성과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 기념사업, 경주 용담 성지 육성 등 교단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다. 이날 만남에는 강병로 종무원장, 전명운 교화관장, 서소연 교무관장, 최인경 사회문화관장, 이철호 경청통합수석실 행정관 등이 배석했다. 전성환 수석은 교령사를 예방한 자리에서 천도교의 역사적 공헌과 오늘의 과제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었고, 제기된 사안들에 대해 “살펴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박인준 교령은 국가 지원사업의 자부담 규정이 규모가 작은 종단에 과도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10억 지원에 1억 자부담”과 같은 일률적 기준이 교단 현실과 맞지 않아 필수 사업이 추진되지 못하거나 회계 운영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박 교령은 “천도교는 3.1혁명에서 막대한 인적, 물적 헌신을 한 전통을 지닌 종단”이라며, 종교 간 상생을 위해 실효성 있는 차등, 완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 수석은 “여러 시민, 종교 단체가 같은 조건 속에 있지만 제안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박인준 교령은 포덕 168(2027)년 해월 최시형 신사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중앙총부에서 계획하고 있는 다큐 영화 제작, 국제학술심포지엄, 성지 정비 등 주요 사업을 제시했다. 최인경 사회문화관장은 해월신사 다큐 영화는 “한 종단 지도자의 전기”가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으로 기획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동학과 천도교의 역사적 연속성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독립유공자 예우와도 연결되는 공적 기억 회복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박 교령은 국제학술심포지엄은 동학 사상의 보편가치를 세계 지성들과 함께 논의해 ‘K-동학’의 학문적 위상을 높이고, 천도교인의 신앙과 실천이 오늘의 인류사회에 기여할 길을 모색하는 자리라고 설명하고, 해월신사가 참형 당한 단성사 앞 역사 현장에 기념 동상(좌상)을 조성해 시민들이 기억을 체험적으로 만나는 장으로 삼고자 한다는 제안을 밝혔다. 지하 구조 등 현실 조건을 고려해 안전한 좌상 형태로 검토 중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에 더해 경주 용담 성지와 경주동학수련원 일대를 국가 차원에서 동학역사문화공원으로 육성할 것을 건의했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도를 받은 천도교 제1의 성지 용담을 체계적으로 정비해 신앙과 교육, 문화가 어우러진 시민 교육의 장으로 삼자는 구상이다. 천도교가 지닌 역사교육 자산을 공공과 협력해 확장하겠다는 뜻도 전했다. 박 교령은 의암 손병희 성사가 우이동 봉황각에서 481명의 지도자를 길러냈고, 그 인재들이 3.1운동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3.1운동기념관 조성의 타당성을 제시했다. 또한 방정환 선생이 의암성사의 사위이며 ‘어린이날’의 창시자라는 역사성을 바탕으로, 국내외 아동 인권, 문화 행사를 연계한 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전성환 경청통합수석과의 환담 자리에서 박인준 교령을 비롯한 중앙총부 교역자들은 동학 천도교 166년의 헌신과 희생이 국가 발전에 기여한 바를 분명히 하며, 정책 결정권자의 인식 개선과 종교정책의 공정성을 거듭 요청했다. 전 수석은 현장의 목소리를 대통령실에 충실히 전달하겠다고 하였고, 교단은 관련 자료를 추가로 정리해 정부 부처와의 협의도 병행할 계획이다. -
“따님과 어머님은 방정환의 하늘님”, 2025 한국·스웨덴 제3회 국제여름방정환학술대회지난 7월 23일,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 방정환 작고 94주기를 기념하는 ‘2025 한국·스웨덴 제3회 국제여름방정환학술대회’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책임교수 홍승진)와 사단법인 방정환연구소(이사장 장정희) 공동 주최로 서울대학교 신양인문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따님과 어머님은 방정환의 하늘님’이라는 주제 아래 국제학술대회는 개막식, 연구발표, 좌담이 마련되었다. 대회측은 본 행사에 앞서, 개막식에서 방정환 작고 94주기를 맞이하여 묵념, 추모 영상과 추모시 낭송으로 구성된 간단한 추모식도 거행했다. 먼저, 개막 사회를 맡은 서울대학교 홍승진 교수는 방정환의 글에 ‘겨울에 내리는 눈이 하느님의 따님이라는 생각이 나오고, 하늘에서 오는 눈이 어머님께서 보내시는 소식’이라는 표현이 나온다며, 곧 “방정환의 하늘님은 ‘따님과 어머님’과 같다”며 대회의 서문을 열었다. 방정환의 하늘님 사상은 곧 천도교의 동학사상과 연관된다는 내용이다. 이어 사단법인 방정환연구소 장정희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최근 ‘여성주의자’가 쓴 방정환에 대한 여성관에 대한 조롱글로 오해가 많이 일어났다며, 여성운동에 관심이 적지 않았던 방정환이었던 만큼 그의 여성관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방정환의 여성관은 그의 어린이 사상 위에서 더불어 종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천도교 측을 대표한 축사에서 천도교여성회본부 김명덕 회장은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 속에 ‘따님과 어머님을 키워드로 앞세운 것은 혜안 있는 일로 경탄을 금치 못한다’며 “방정환을 새롭게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의 여성관, 나아가 생명존중과 다시개벽(후천개벽)의 실천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초청국가는 매년 주빈국 1개국과의 교류에 집중한다. 2022년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1회 독일을 초청한 데 이어, 제2회 때는 영국, 올해 제3회 대회는 스웨덴 교류를 기획하여, 스톡홀름대의 저명 아동문학 연구자인 ‘엘리나 드뤼케르’ 교수를 기조 강연자로 초청했다. 엘리나 드뤼케르 교수는 ‘복종에서 행위성으로’라는 반향 있는 주제로, 북유럽 페미니즘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아동문학에 대해 발표했다. 참가국의 면에서도 대회측은 주빈국 스웨덴 외에도 그 동안 교류해 온 해외 아동문학 연구 학자 중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학자를 온라인에 초대하여 함께 했다. 참가국은 스웨덴(주빈), 몽골, 일본, 인도네시아, 대만, 일본 (온라인 입장) 등이며, 참가인사: 엘리나 드뤼케르(스웨덴 스톡홀름대), 바트체첵(몽골 울란바토르대), 호링 주(대만, 다이통대 아동문학연구소), 오타케 키요미(일본, 동경쥰신대), 영미 리(인도네시아, 한인니문화원)이다. 논문 발표는 방정환과 여성주의에 관련한 천도교여성회 연구, 아동극, 현대 아동문학, 스웨덴 엘렌케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연구 등 각계 뛰어난 5편의 학술 논문이 제출되었다. 학술대회 제1주제로 ‘방정환의 여성관에 대한 검토’에서는 방정환 어린이 예술 세계에 나타나는 근본적 여성관, 가족관의 지향점과 한계를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동학사상과 아동문화예술의 미학 사이에 어떠한 구체적 연관성이 있는지를 논의했다. 성강현(동의대) 교수는 ‘동학의 관점으로 본 여성주의의 실천 방법 탐구-천도교 여성회 설립과 개벽사 ????신여성???? 창간’을 발표하고, 손증상(부경대) 교수는 방정환과 여성, 그리고 <한네레의 죽음>을 발표했다. 학술대회 제2주제로‘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본 현대 아동문화예술’에서는 스웨덴 아동문학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시도와 함께 한국의 아동극 및 청소년 소설 등에 나타나는 여성 표상을 심도 있게 고찰했다. 최선경(한국외대) 교수의 ‘엘렌 케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그리고 어린이의 권리에 대한 여성주의적 고찰’, 장미영(숙명여대) 교수의 ‘신지식 소녀소설에 나타난 모성적 인물의 역할과 아동의 연대의식 형성 연구’, 강윤아(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아동극 <가믄장 아기>의 젠더에 관하여’ 발표가 차례로 이어졌다. 학술대회 제3주제로 좌담으로 마련된 ‘아동문학이 여성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 나갈 것인가’주제에서는 좌장 홍승진 교수의 사회로 5명의 발표자와 토론자로 나선 이정아(서울대), 장성희(서울예대), 지상선(성균관대), 최배은(숙명여대) 교수와 김민경(홍파초교) 교사가 모두 무대의 좌담석에 착석하여 심도 있는 고민과 활발한 토론을 전개했다. 대회측은 참석자들의 중론을 모아 앞으로 주제를 3년 정도 이어서 발전시켜 보기로 했다. 기사, 사진제공 방정환연구소 -
천도교 청년회·대학생단, 박인준 교령과 간담회지난 6월 7일(토) 낮 12시, 박인준 교령은 청년회 및 대학생단 단원 등 10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 5월 어린이날 행사의 성과를 되짚고, 향후 청년회와 대학생단의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자 마련되었다. 참석자들은 다가오는 청년회 창립기념식 준비를 비롯해, 동천고등학교 및 동천교구와의 교류 방안, 해월신사 탄신 200주년 기념 사업 등 다방면의 활동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었다. 특히 준암 박인준 교령은 청년 세대의 역할과 주체성을 강조하며, “앞으로의 천도교는 젊은동덕들의 의지와 열정으로 빛나길 바란다.”며 격려의 말씀을 전했다. 또한 청년회와 대학생단 단원 유치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들이 오가는 가운데, 참석자들 간에 소통과 협력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되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청년회의 한 회원은 “교령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직접 미래 계획을 공유하고 조언을 들을 수 있어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앞으로의 활동에 더욱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간담회는 천도교 청년세대의 결속과 비전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향후 천도교 내 청년 활동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청년회와 대학생단은 이러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청년 교화에 뜻을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정성으로 힘을 보탤 성금 계좌는 다음과 같다. [청년회] 우리은행 513-240146-13-101 (예금주: 청년회중앙본부) [대학생단] 카카오뱅크 3333-19-0677270 (예금주: 조화정 단장) 사진, 기사제공 천도교청년회 -
유튜브 천도교방송, 어린이날 맞아 소파 방정환 선생 조명하는 특집 영상 공개천도교는 어린이날을 맞아 유튜브 천도교방송을 통해 소파 방정환 선생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특집 영상을 공개했다. 이번 영상은 방정환 선생이 천도교 교인으로서 어린이 운동에 헌신하게 된 배경과 그 정신적 뿌리를 깊이 있게 조명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다. 영상은 방정환 선생이 실천한 천도교의 종지(宗旨)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중심으로, 그가 어떻게 모든 어린이를 ‘한울님을 모신 존재’로 바라보았는지를 강조한다.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 사상은 조선시대의 신분제를 부정하고, 인간 평등과 약자 보호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근대적 인권 사상이었다. 영상에서는 또한, 1920년대 이전까지 ‘어린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적 배경도 소개된다. 당시 어린이들은 ‘애기’, ‘애새끼’, ‘계집애’ 등 비하적 언어로 불리며 어른의 축소판으로만 여겨졌고, 매우 어린 나이부터 노동에 내몰리곤 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방정환 선생은 천도교소년회의 실무자로 활동하며, ‘어린이’라는 말을 창안하고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또,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선언’을 발표하며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하늘을 모신 존귀한 존재로 대할 것을 사회에 천명했다. 이는 단순한 보호의 수준을 넘어선, 어린이를 위한 '개벽'의 실천이었다. 천도교 관계자는 “이번 영상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동시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어린이 인권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천도교의 시천주와 개벽 사상이 어떻게 어린이 운동으로 구현되었는지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고 전했다. 영상은 천도교방송 공식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김준혁 의원, 김재원 의원, 천도교 예방… 동학 · 천도교 역사 복원과 국가적 지원 논의민주당 김준혁 의원과 조국혁신당 김재원 의원은 지난 5월 20일 천도교중앙총부를 예방해 박인준 교령 등 교단 관계자들과 면담하며 동학·천도교의 역사적 가치와 국가 차원의 지원 필요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준암 박인준 교령은 "동학은 1860년 4월 5일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한울님으로부터 다시개벽의 무극대도를 받아 창도한 자생적 민족사상으로, ‘보국안민’과 ‘만민평등’ 정신을 바탕으로 조선의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이 사상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1919년 3.1운동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으며,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 잡았습니다."고 밝히며, "천도교는 3.1운동 당시 개신교·불교계와 연합해 민중혁명의 중심에 섰고, 이후 교육·출판·여성·농민·어린이 운동을 통해 민족계몽운동에 기여했으며 임시정부와 협력해 항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박 교령을 비롯한 교역자들은 김준혁 의원, 김재원 의원과의 만남에서 경주 용담정과 서울 봉황각 성역화, 동학역사문화공원 조성 및 동학교육수련원 수탁 경영, 천도교 방송 설립과 콘텐츠 개발, 의암 손병희 묘소 인근 3.1기념관 건립(보훈처·광복회 협조), 어린이날 행사 국가적 특별지원, 동학사상 학술 연구기관 설립과 동경대전·용담유사 현대화, 동학 순례길 조성, 교과서 내 동학농민혁명·3.1운동 서술 보강 및 혁명 참여자 서훈 재심, 3.1절 기념식 정례화 등을 건의했다. 또한 2023년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후 누락된 동학 관련 간행물, 문서 등의 추가 등재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해월 최시형 신사 탄신 200주년을 맞아 세계학술대회 개최, 단성사 앞 해월신사 동상 건립, 해월기념관 건립 등의 기념사업 추진도 제안했다. 특히 동학 시대 이래 만들어진 출판물들이 한국 근현대사의 소중한 기록임을 강조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한 ‘동학아카이브(가칭)’ 구축 및 동학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 지원도 시급하다는 점을 요청했다. 아울러 동학이 근현대사에 미친 영향이 크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동학 용어, 인물, 사건 등에 관한 사전 작업이 미흡하다며 ‘동학사전’ 편찬 작업에 대한 지원도 함께 건의했다. 김준혁 의원과 김재원 의원은 "동학 사상을 계승하고 우리나라 독립운동에도 큰 공헌을 한 천도교가 앞으로 새로운 정부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새롭게 조명 받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말하며, “천도교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민족정신을 이끌어온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며 “그 역사적 위상 회복과 정신 유산 계승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미래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사진 : 교령사 -
천도교동두천교구,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 개관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아동문화운동을 이끈 소파 방정환 선생의 뜻을 기리는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이 지난 5월 22일 오후 2시, 동두천 지역에 문을 열었다. 이날 개관식은 천도교동두천교구 주최, 천도교중앙총부 후원으로 성대하게 개최되었으며, 지역사회와 천도교 관계자, 시민들이 대거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행사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청수봉전, 심고, 참석자 소개, 인사말, 축사, 폐식 순으로 이어졌으며, 2부에서는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바리톤 강신택, 소프라노 남상임, 테너 이정현, 피아니스트 양해나 등이 참여해 <산촌>, <눈>, <가고파>, <뱃노래>, <꽃구름속에>, <거문고 뱃노래>, <사랑가(오페라 춘향전 중)> 등 다채로운 무대를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날 축사를 맡은 준암 박인준 천도교 교령은 “작은 도서관 운동의 뿌리를 찾아보면 천도교와 닿아있다”며, “1921년 소파 방정환 선생의 주도로 창설된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했고, 1922년에는 최초의 어린이날을 제정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령은 이어 “색동회 창립, 아동 예술 강습회 개최, 기관지 『어린이』 창간 등 천도교는 아동문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다”며, “오늘 개관한 소파 방정환 색동도서관은 역사적, 종교사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갖는다. 이곳이 동두천 지역의 어린이 문화 활동에 선구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강정환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 관장은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희망과 꿈을 전하는 작은 도서관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셨던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청소년 교육에 힘쓰고, 다양한 멀티미디어 교육 콘텐츠도 개발해 동두천이 미래 청소년 교육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후원해 주시는 분들과 기업들과 함께 청소년들이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도서관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정신을 계승해 어린이 인권과 문화를 위한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며, 천도교와 지역사회가 협력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향후 소파방정환색동도서관이 지역사회에서 어린이 문화의 새로운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사진제공 : 교령사 -
제 104회 어린이날 기념행사 및 어린이 시일식 박인준 교령 축사제104회 어린이날 기념행사 및 어린이 시일식을 맞이하여 박인준 교령이 축사를 하였다. 박 교령은 축사를 통해 천도교가 어린이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강조하였다. 또한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이름을 처음 지었으며, 천도교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설명하였다. 박 교령은 "천도교는 어린이들이 따뜻한 사랑 속에서 올바르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해왔으며, 앞으로도 어린이를 위하고 사랑하는 일에 앞장설 것을 약속합니다. 어린이들이 우리나라의 큰 일꾼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청년회 대학생단의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라고 말했다. 박 교령의 축사는 어린이 존중이라는 천도교의 핵심 가치를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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