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우리 음악’의 길 개척하며 천도교 음악의 새 지평을 연 늦깎이 국악 작곡가 정수당(正守堂) 김정희 동덕지난 8월 14일 제162주년 지일기념식. 의례를 마친 뒤 무대에 오른 문화공연은 많은 교인에게 오래 남는 감동을 주었다. 판소리 〈흥보가〉의 흥에 이어, 『해월신사 법설』을 가사로 삼은 창작곡 〈수심정기〉, 천덕송 가운데 민족적 선율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 〈영부의 노래〉가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온 장내가 함께 부른 〈진도아리랑〉이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이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한 이는 북한 토속민요 연구와 천덕송 창작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 정수당(正守堂) 김정희 동덕(영등포교구)이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뒤늦은 음악 공부, 육아와 생계를 모두 감당해야 했던 삶의 조건 속에서도, “언젠가는 작곡가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다짐을 놓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다. 북한 민요 연구와 동학 천도교 음악 연구, 천덕송에 대한 고민과 창작은 그에게 단순한 직업을 넘어 ‘천도교인으로서의 삶’ 그 자체였다. 김정희 동덕이 작곡가로서 젊은 세대의 천도교인에게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천덕송의 내일에 관해 그의 인생사와 함께 들어본다.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 되는 동귀일체, 그것이 천도교 음악” 문. 제162주년 지일기념식 후 문화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셨습니다. 의례 이후 교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문화적 장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기획 단계에서 가장 고민하신 부분은 무엇이었으며, 천도교 정신을 무대 위에 어떻게 담아내고자 하셨는지요? 답. 천도교가 ‘민족종교’라면 음악 문화에서도 그 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첫 곡은 우리 전통 성악의 대표 장르인 판소리, 그 가운데서도 가장 흥겹고 재미있는 〈흥보가〉의 ‘박타령’을 골랐습니다. 두 번째는 지일기념일의 의미를 살려 『해월신사 법설』 〈수심정기〉 일부를 가사로 삼고, 중모리장단에 창부타령조 선율을 입혀 제가 작곡한 곡 〈수심정기〉를 올렸고요, 마지막 곡은 천덕송 중에서 전통 선율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보는 〈영부의 노래〉를 선택했습니다. 앵콜곡은 누구나 함께 부를 수 있는 〈진도아리랑〉으로 마무리했고요. 무대를 만들면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건 ‘동귀일체(同歸一體)’였습니다. 연주자는 연주만 하고 관객은 듣기만 하는 구조가 아니라, 추임새도 넣고 같이 따라 부르면서 연주자와 청중이 한마음이 되는 공연 말입니다. 우리 전통음악은 본래 그런 문화였고, 저는 그 전통이야말로 천도교의 시천주, 사인여천, 동귀일체 정신과도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엄마와 작곡가, 어린 시절 두 가지 꿈이 끝내 저를 여기까지 데려왔죠” 문. 선생님은 흔히 말하는 정규 코스를 밟은 음악인이라기보다, 여러모로 우회로를 걷다가 작곡가의 길로 들어서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음악과의 인연을 간단히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답. 제가 기억하기로는 열 살 무렵 제 인생 목표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좋은 엄마가 되는 것, 두 번째는 작곡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어려서부터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에 초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세광 애창 700곡집』이라는 노래책을 사 오셨고, 제게 악보 읽는 법을 알려주셨어요. 그 책에 수록된 세계 각국의 동요·민요·가곡 악보를 보며 하루 종일 부르고 또 부르며 놀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 언어의 발음도 익히게 되었고, 악보를 보고 부르거나, 들은 멜로디를 악보로 옮기는 일이 제게 즐거운 놀이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제 음악 인생의 첫 출발점이었고, 이후 어머니께서는 어려운 형편에도 1년 동안 피아노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피아노 외의 음악 공부는 모두 독학이었지요. 그러나 음악은 저에게 늘 ‘해야 하는 공부’가 아니라 ‘멈출 수 없는 재미’였습니다. IMF, 해고, 재취업 실패… 그렇다면 지금은 공부할 시간! 문. 스무 살에는 공대를 선택하셨다가, IMF 시기에는 음악학원 교사로 일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음악 전공을 결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답. 삶이 계획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더군요. 대학에서는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이후에는 공장에도 다녔습니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은 뒤에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정시에 출퇴근을 해야 하는 맞벌이를 하기가 어렵게 되어, 음악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격증이 없어 감사에 걸려 해고됐고, IMF가 겹치면서 남편의 직장도 불안정해졌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일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때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공부에 쓰자.” 마침 정년퇴직하신 친정어머니께서 연금 일부를 일시불로 받아 제게 보태주셨고, 그 돈으로 부산예술대학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작곡을 전공하려면 작곡과 피아노를 둘 다 배워야 했고, 작곡 레슨비가 너무 비쌌기에, 아는 언니에게 한 달에 일정액을 드리며 1년 반 정도 피아노 레슨을 받아서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한 학기 지난 후에 작곡 전공으로 바꾸었지요. 그때까지 화성법, 대위법, 음악사 등은 모두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는 육아와 살림, 공부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기에 참 고단했습니다. 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도 못 말린다”는 말처럼, 자발적으로 선택한 공부였기에 버틸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제가 나중에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자발성’의 힘을 몸으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토속민요에서 발견한, 난생처음 들어본 독창적인 아름다움 문. 선생님의 대표 연구 분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북한 토속민요입니다. 이 분야를 본격적으로 파고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답. 국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던 시기에 황해도 토속민요인 <풍구소리>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 선율이 너무 좋아서 “이 곡으로 작품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북한 토속민요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석사 논문이 단 두 편뿐이더군요. 황해도 한 편, 함경도 한 편. 평안도 토속민요에 대한 논문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때 ‘이건 보물창고가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토속민요는 한 집단의 음악적 모국어이자 삶의 기록인데, 분단과 세월 탓에 절반이 통째로 공백 상태로 남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북한 토속민요부터 연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한국민요대전』을 집대성하신 최상일 PD님을 만난 일이었습니다. 특강 자리에서 인사를 드리며 제가 “북한 토속민요를 석‧박사 과정에서 연구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께서 “음원은 어디서 구할 건데?”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이주민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모아보겠다”고 하니, “MBC에 이미 수천 곡이 들어와 있는데?”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장기간에 걸쳐 구하신 북한 현지 음원을 정리하고 계셨던 겁니다. 남북 정상회담을 기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엮은『북한 민요 작품집』 문. 그렇게 연구하신 북한 민요와 창작이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하나의 작품집으로 묶였지요? 답. 북한 민요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2002년입니다. 그 이후로 논문을 쓰는 한편, 북한 토속민요 선율을 바탕으로 곡도 꾸준히 써왔습니다. 그러던 중 2018년에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쏠리는 걸 보며 ‘이제까지 써온 곡들을 모아 한반도의 평화와 상생을 기원하는 첫 작품집을 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때까지 북한 토속민요를 바탕으로 한 곡이 일곱 곡 있었는데, 정상회담을 기념하는 의미로 한 곡을 더 만들어 여덟 곡짜리 작품집을 완성했습니다. 연주 시간으로 환산하면 65분이 조금 넘는 분량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첫 작품집이자 지금까지도 유일한 작품집입니다. 북한 민요에는 정말 독창적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들어본 어느 나라 노래와도 다른, 우리만의 음조직과 장단, 정서가 살아 있습니다. 그 음악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불러내는 작업은 남과 북을 잇는 다리이자, 동학 천도교가 지향해온 만민평등과 평화의 이상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연기연>을 읽고 변증법이 떠올라 무척 놀라웠습니다” 문. 천도교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답. 부산예술대학에 다닐 때 <인간과 종교>라는 교양 과목이 있었습니다. 첫 수업 시간에 김용휘 교수님께서 “종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라고 물으셨고, 제가 유일하게 손을 들었습니다. “종교가 없어도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성인들이 남긴 책도 있고, 양심에 비추어도 도리를 알 수 있는데 왜 꼭 종교가 필요한가”라는 것이 제 생각이었지요. 그런 제가 동학 천도교 교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된 건 바로 그 수업을 맡으셨던 김용휘 선생님, 그리고 같은 학교 교수님이셨던 김춘성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입니다. 『동경대전』의 <불연기연(不然其然)>을 처음 공부하게 되었을 때 무척 놀랐습니다. “이게 변증법 아닌가? 헤겔 철학이 들어오기 훨씬 전인 19세기 중엽 조선에 이미 이런 사유가 있었다니.” 하는 놀라움이었지요. 이어서 해월 신사의 삼경(三敬) 사상, 이천식천(以天食天), 향아설위(向我設位) 같은 가르침을 읽으면서, 제가 평소에 중요하게 여겨온 좌우명들이 이 교리 안에 다 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경물(敬物)’ 사상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물티슈나 일회용 기저귀를 거의 쓰지 않았고, 화악산수도원에서 화장실 쓰레기를 태우는 일을 하면서 일회용품이 남기는 잔해와 독성의 문제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만물을 공경하라’는 삼경 사상과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용담정 수련이었습니다. 당시 제 삶은 여러모로 바닥을 치고 있었고,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수련을 하면 마음에 힘이 생긴다”고 권유하셔서 겨울방학 기간에 2박 3일 용담정 수련에 참여했습니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그 시간 동안 비록 특별한 체험은 없었지만 ‘이 길을 계속 가면 내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련 둘째 날 “입교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마침 제 생일 바로 다음 날이 제 입교일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천도교인으로서의 삶’을 저의 중심에 두게 되었습니다. <불연기연> 등 네 곡의 천덕송으로 은사님 환갑을 축하하다 문. 천덕송 창작 역시 선생님의 작업 가운데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특히 포덕 157년(2016) 은사이자 전교인이신 김춘성 선생님의 회갑을 맞아 네 곡의 천덕송을 작곡해 선물하셨는데요, 그 사연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답. 박사학위 논문을 마치고 나니 “전교인이 김춘성 선생님이신데, 나는 아직 선생님께 밥 한 끼 제대로 대접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선생님의 환갑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선생님께 가장 기쁜 선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천덕송’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한울님께 마음속으로 “김춘성 선생님께 드릴 천덕송을 만들고자 하니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경전을 펼쳤더니, 맨 먼저 <불연기연>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연스럽게 첫 곡을 『동경대전』의 <불연기연>으로 정했고, 두 번째 곡은 힘든 시기에 제가 가장 많이 읽었던 대신사님의 <시문>, 세 번째 곡은 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 집약된 〈수심정기〉, 네 번째 곡은 『의암성사 법설』 가운데 〈진심불염〉으로 정했습니다. 집에서는 집중하기가 어려워 노트북과 경전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작곡을 했습니다. 한 달 동안 네 곡을 작곡하고, 국악기 편성으로 반주를 붙인 후 연주자를 섭외하고, 녹음과 편집, 믹싱, 마스터링까지 마쳤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너무 촉박한 일정이라 아쉬움도 남지만, 한울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추석 전날, 인사동에서 선생님과 단둘이 식사를 한 뒤 찻집에서 “선생님, 환갑 선물입니다.” 하고 그 음원을 들려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 무척 기뻐하셨고, 그 순간 저 역시 “천덕송과 천도교 음악 문화에 내 삶을 더 깊이 바쳐야겠다”는 마음을 다시금 다지게 되었습니다. 네 곡 가운데 특히 〈시문〉과 〈진심불염〉은 지금도 제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입니다. "천덕송은 동귀일체를 이루는 노래이자, 평등·평화·생명을 담아내는 노래" 문. 음악 연구자이자 작곡가의 시선에서 볼 때 천덕송이 지닌 정신적·예술적 본질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답.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힘이 있습니다. 말이나 글처럼 논리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영혼의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느 집단이든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공동체 의식을 다져왔습니다. 학교에는 교가가 있고, 군대에는 군가가 있고, 국가에는 국가(國歌)가 있듯이 말입니다. 오래전부터 농부들은 들노래를 부르며 함께 땅을 갈았고, 어부들은 뱃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잡았습니다. 다투던 사람들도 같이 노래하며 일하는 동안에는 한마음이 되었지요. 천덕송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천덕송을 부르는 것은 결국 동귀일체(同歸一體)를 이루고자 함입니다. 천덕송은 천덕사은을 노래하고, 동귀일체를 추구하며, 신심을 돈독히 하고, 깨달음의 기쁨을 표현하는 종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동시에 약자와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평등과 평화에 기여하고, 어렵게 이룩한 민주주의의 열매를 더욱 공고히 하는 사회·역사적 역할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냉전과 분단을 넘어 평화로 나아가는 길에 힘을 보태는 노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외되고 메마른 현대인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따뜻한 감성과 영성을 일깨우는 문화・예술적 역할 역시 중요합니다. 저는 이런 모든 요소를 아우르는 것이 천덕송의 정신적·예술적 본질이라고 봅니다. 일본 노래에서 온 곡들은 이제 보내줄 때… 21세기 가치로 새 천덕송 지어야 문. 오늘날 교단 내부에서도 “천덕송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와 호흡하는 새 천덕송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답. 포덕 159년(2018), 『신인간』에 〈천덕송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현재 부르고 있는 천덕송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짚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가장 심각한 점은 몇몇 곡의 선율이 일본 노래에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목적풀이〉는 일본의 〈철도창가〉에 노랫말만 바꾼 곡이고, 〈검가(기 2)〉와 〈배 떠나간다〉는 일본 특유의 ‘요나누키’ 단음계로 된 일본풍 노래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민족을 침탈하고 동학군을 학살했던 역사가 분명한데, 그런 노래들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오래 불러왔으니까 계속 부른다”는 태도로 유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사 측면에서도 교리·교사와 어긋나는 표현, 어법에 맞지 않거나 뜻이 모호한 구절, 품위가 떨어지는 내용, 현재 맞춤법, 띄어쓰기와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정리가 필요합니다. 운율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 전통 시가의 기본 운율은 대체로 3·4조, 4·4조에 2음보인데, 7·5조에 3음보라는 형식은 일본 전통 시가에서 온 것입니다. 이런 부분은 우리 고유의 리듬과 말맛을 살릴 수 있도록 바로잡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오늘의 천덕송은 21세기 인류가 함께 고민하는 가치들―생태·문화다양성, 상생, 인권, 연대, 복지, 평등, 평화 등―을 적극 반영해야 합니다. 이런 가치들은 수운 대신사, 해월 신사, 의암 성사가 가르쳐주신 바와도 직결됩니다. 동시에 전통 양식과 민족적 요소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도교 음악 문화의 정체성을 세우면서도 다양성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방향에서 ‘내일의 천덕송’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학 천도교의 서사와 민요의 서정을 만나게 하는 것이 제 작업" 문. 선생님은 북한 민요뿐 아니라 경기·서도·남도 등 다양한 민요를 연구하고 창작에 활용해오셨습니다. 민요 속에서 천도교 정신을 어떻게 발견하고 재현해내고 계신지,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해주신다면요? 답. 제가 2016년에 작곡한 네 곡의 천덕송 가운데, 『의암성사 법설』을 가사로 삼은 〈진심불염〉은 전남 영광군 논매는소리 〈문여가〉의 선율을 주제로 삼아 만든 곡입니다. 두레 공동체가 함께 논을 매면서 부르던 그 노래에는 꿋꿋하고 유장한 선율, 서로를 북돋는 공동체 정서가 잘 녹아 있습니다. 저는 그 선율에서 의암 성사의 기상을 떠올렸고, 그래서 그 음형을 〈진심불염〉의 주제 선율로 삼았습니다. 민요를 바탕으로 새 천덕송을 짓는 작업이 제 첫 번째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연구 작업입니다. 포덕 162년(2021)에는 ‘동학농민혁명의 음악 양상과 문화콘텐츠로서의 잠재성’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한국민요대전』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새야 새야〉 외에도 여섯 가지 다른 선율의 〈새야 새야〉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이나 천도교와 관련된 노래는 그 수가 많지 않지만, 넓은 지역에 퍼져 있고, 비슷한 가사가 <논매는 소리>, <무덤 다지는 소리>, <정월 대보름 새 쫓는 소리>, <둥당애타령> 등 여러 갈래 민요에서 나타납니다. 이런 사례들을 찾아내고 분석해 논문으로 공유하는 것이 제 두 번째 작업입니다. 동학 천도교의 주체도 백성이고, 민요의 주체도 백성입니다. 저는 동학 천도교의 서사와 민요의 서정을 만나게 하고, 여기에 ‘지금 이곳’의 지향과 정서를 담아 예술적 숨결을 불어넣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민요는 역사성과 지역성, 시대성과 정체성을 모두 갖춘 새로운 천도교 음악 문화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장구·단소와 함께 부르는 천덕송, 어린이에게는 ‘진짜 전래동요’를! 문. 앞으로 교단의 주요 의례나 행사에 민요적 요소와 국악을 더 깊이 접목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구상을 하고 계실 줄 압니다. 민요의 서정성과 공동체성이 교단 문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요? 답. 우선 우리 어린이들에게 ‘진짜 전래동요’를 돌려주고 싶습니다. 널리 알려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두껍아 두껍아〉, 〈쎄쎄쎄〉, 〈여우야 여우야〉 같은 노래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 일본 와라베우타(동요)입니다. 와라베우타는 대부분 2분박, 2/4나 4/4 박자가 많고, 특정 음으로 종지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반면 한국 전래동요는 3분박이 많고, 12/8 박자가 가장 흔합니다. 이런 차이를 바로잡기 위해 포덕 162년(2021) 서울우리소리박물관에서 『전래동요 자료집』과 음원을 제작해 보급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런 ‘진짜 전래동요’를 천도교 어린이들이 널리 부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천덕송 가운데 〈영부의 노래〉, 〈지일기념가〉처럼 민요풍으로 작곡된 곡들은 피아노 대신 장구와 단소로 반주하면 훨씬 흥겹습니다. 장구와 단소는 이미 초등 교과 과정에도 들어가 있으니, 역량이 되는 교구에서는 유소년부를 활성화해 ‘장구·단소로 천덕송 연주하기’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민요라는 보물창고를 잘 활용해 새 천덕송을 작곡하는 작업도 병행할 수 있겠지요. 이번 지일기념식에서처럼 교단의 각종 의식과 행사에 국악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중앙총부와 각 교구의 음악 문화도 점차 뚜렷한 정체성을 갖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제대로 된 우리 문화를 만드는 일이 곧 ‘천도교인의 길’ 문. 안익태 애국가 문제 제기, 북한 민요 연구, 천도교 음악 연구 등 선생님이 다뤄온 주제들은 기존 음악계가 쉽게 손대지 않는 어려운 분야였습니다. 이런 작업들이 결국 천도교 음악과 문화적 자산으로 어떻게 연결될지요? 답. 한국 근대사에서 천도교는 3‧1운동을 비롯한 항일운동뿐 아니라 『천도교회월보』, 『개벽』, 『농민』, 『신여성』, 『어린이』 등 다양한 잡지를 통해 대중의 의식과 문화를 선도한 주역이었습니다. 천일기념식, 어린이날 행사 등도 온 나라가 주목하는 문화행사였지요. 스승님들은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제가 하는 작업들은 제가 속한 영역에서 잘못된 것들을 하나씩 바로잡으면서, 앞으로의 우리 문화를 ‘제대로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색이 짙은 곡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우리 정서와 양식에 기반한 새로운 천덕송을 짓고, 한국적 색채와 천도교 정신이 어우러진 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올리고, 동학·천도교와 관련된 음악 문화를 학문적으로 정리해나가는 일들이 모두 그렇습니다. 결국 이 모든 작업은 ‘천도교인으로서의 행위’입니다. 제가 걸어온 길과 그 결과물들이 조금이라도 천도교의 문화자산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노래만큼 우리 노래도, 남의 학문만큼 우리 자신도 연구합시다” 문. 오늘날의 천도교인, 특히 젊은 세대 교인들에게 음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요? 답. 세 가지 정도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남의 노래를 듣고 부르는 만큼 우리 자신의 노래도 듣고 부르자는 것입니다. K-팝이 세계를 누비는 시대지만, 그 바탕에는 우리의 민요와 전통음악, 그리고 동학 천도교의 노래들이 있습니다. 천덕송과 우리 민요를 사랑하는 마음이 곧 천도교 음악의 미래를 여는 힘이라고 믿습니다. 둘째, 남의 학문을 배우고 연구하는 만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연구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동・서양 철학과 음악을 두루 섭렵하면서도, 결국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지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준 것이 동학 교리와 우리 음악이라고 느꼈습니다. 『동경대전』의 불연기연, 삼경 사상, 특히 경물 사상은 오늘날 생태위기와 인류 문명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큰 자산입니다. 셋째, 나의 모든 말과 행동이 천도교인의 것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제 삶을 돌아볼 때, 특별한 재능이라기보다 물욕이 적고, 의지가 강하고,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붙드는 성향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성향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준 것이 바로 천도교 신앙과 수련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남북한 민요 연구를 더 깊게 이어가고, 새로운 천덕송을 작곡하고, 제자들을 길러내며, 천도교 음악 문화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남의 노래만큼 우리 노래를, 남의 학문만큼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연구할 때 천도교의 노래와 문화도 다시 한번 꽃피울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진행 노은정 전 편집장) 김정희 동덕이 작곡한 <불연기연> 악보와 가사 및 유튜브로 감상하기 https://www.chondogyo.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975 김정희 동덕이 작곡한 <시문> 악보와 가사 및 유튜브로 감상하기 https://www.chondogyo.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976 김정희 동덕이 작곡한 <수심정기> 악보와 가사 및 유튜브로 감상하기 https://www.chondogyo.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977 김정희 동덕이 작곡한 <진심불염> 악보와 가사 및 유튜브로 감상하기 https://www.chondogyo.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978 -
[칼럼] 동학(東學) 연구를 넘어서 천도교학(天道敎學) 정립으로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인 지구 행성은 급변하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물질문명의 극단적인 발달과 정신적 가치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를 ‘개벽세(開闢世)’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혼돈(混沌, chaos) 속에서,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인류의 새로운 정신적 좌표를 제시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핵심적인 가치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천도교의 근본 이념과 교리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는 천도교학(天道敎學) 정립은 시대적 요구에 비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또 현재 모처럼 전국적으로 열기를 띠고 있는 동학 르네상스가 천도교에 대한 관심 혹은 연구(공부)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천도교의 미래와 인류의 활로를 열기 위해 천도교학 정립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소명으로 인식해야 한다. 또한 <대종정의(大宗正義)> 「오교의 신사상시대」를 보면 “우리 (천도)교의 본소(本素)는 가득히 차서 반푼의 더할 것을 요구치 아니하나, 이것을 발표하기는 사상문명으로 현대문명의 선구(先驅)를 지어야 하느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다시 개벽’의 시대, 문명대전환의 시대를 이끌어갈 ‘천도교학’을 정립하여 포덕광제의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 그럼 우리가 정립해야 할 천도교학이란 무엇인가? 천도교학이란, 수운대신사가 창명한 천도(天道)와 동학(東學) 그리고 의암성사에 의해 근대적 종교체제를 도입·구축한 천도교(天道敎)의 교리, 역사, 문화, 사상 및 그 실천적 의미를 총체적으로 연구하고 체계화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교의(敎義)를 넘어,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정신을 통해 현 시대의 문제에 대한 해법과 지구적 차원의 위기에 대한 대응 방안, 현대문명의 대안을 제시하는 실천적인 학문이다. 천도교학은 기독교학, 불교학, 도교학 등과 같이 종합학문적인 성격을 띤다. 따라서 앞으로 연구 성과가 축적된다면 이를 다시 분야별로 세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천도교학은 그동안의 동학농민혁명 역사 중심의 동학(東學) 연구와는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이제는 K-컬쳐(=문화)의 뿌리가 되는 K-사상 연구 흐름과 함께 기존의 동학 연구를 넘어서는 천도교학을 연구·정립해야 한다. 동학 연구가 천도교의 뿌리와 발생 배경을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천도교학은 그 뿌리를 바탕으로 현대에 살아 숨 쉬는 종교로서의 천도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과 가치를 학문적으로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천도교학 정립은 천도교를 단순한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의 살아있는 종교'이자 '미래 문명의 대안'으로 확립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작업인 것이다. 물론 천도교학 정립 과정에는 기존의 동학 연구의 축적된 성과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엄밀한 문헌비평을 바탕으로 해체(解體, deconstruction)하는 작업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천도교학 체계 정립의 기본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종교학을 핵심으로 하되, 철학, 역사학, 사회학, 인류학 등 다학문적 방법을 통합하여 천도교 현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천도교의 핵심 교리(시천주, 사인여천, 후천개벽 등)와 역사(동학혁명, 3·1혁명 등), 조직(중앙총부, 교구), 수행/의례(주문, 시일식 등)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종합적 학문 분야로 정립한다. 마지막으로 천도교 사상이 현대 사회의 문제(환경, 평화, 인권 등)에 제시하는 의미를 찾아 실천적 역할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천도교학은 우선적으로 천도교의 다섯가지 핵심 교리를 중심으로 현대학문을 참조하여 그 내용을 체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시천주(侍天主)의 종교학·신학적 정립이다. "내 몸에 한울님을 모신다"는 이 근본 교리의 신관(神觀)과 인간관(人間觀)을 현대 종교학·신학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심화해야 한다. 특히 한울님과 인간의 내재적 합일이라는 독특한 사상을 서구 종교와의 비교를 통해 보편성과 독창성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윤리학적 정립이다. "사람 섬기기를 한울님 같이 하라"는 가르침은 인류 평화와 공생의 시대를 여는 현대 윤리의 핵심 원리이다. 인간 존엄성을 극대화하는 이 사상을 생태 윤리, 사회 윤리 등에 확장하여 적용하는 학문적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문명사적 해석이다. ‘다시 개벽(開闢)’을 통해 오는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의 비전은 시대적 변혁과 새로운 문명 건설의 동력을 제공한다. 이는 미래학, 사회 변동론 등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수심정기(守心正氣)의 수양론적 정립이다.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르게 한다"는 수양법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과 영성 회복의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이는 심리학, 명상학 등의 학문과 연계하여 그 과학성과 실천성을 입증하고 보급해야 한다. 아울러 의암성사의 ‘이신환성(以身換性)’ 수행법과 비교분석하여 천도교 수행법의 변화발전 양상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이웃 종교의 수행법과 비교하여 그 독특성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다섯째, 궁극적 목표로서의 지상천국(地上天國) 건설론이다. 천도교의 최종 목적인 '이 세상에 한울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적 관점에서 연구하여 구체적인 사회 개혁 모델과 정책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을 도출해서 구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천도교의 역사를 철저한 고증(=실증)을 바탕으로 다시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 따라서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 사실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공정하게 기술해야 한다. 특히 그동안 미흡했던 천도교 제도변천사의 연구·정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향후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천도교백년약사<상권> 이후 중단되었던 교사 편찬을 차근차근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 천도교학 정립의 실제적인 방법론은 무엇일까? 우선 천도교 중앙총부 산하에 독립적인 (가칭)천도교학연구원이나 천도교학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대학교를 설립하여 천도교학과를 설치·운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현재 운영 중인 천도교종학대학원과 연구소 등을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이를 위해 먼저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교단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종교학, 철학, 역사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연구 인력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지원하여, 학문적 객관성과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 다음으로 경전의 현대적 해석(解釋) 및 교재 편찬이다.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등의 핵심 경전을 현대어로 풀이하고 주석을 달아 일반 대중과 학계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교인과 일반인을 교육할 체계적인 천도교학 교재를 편찬해야 한다. 경전의 현대화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교인들의 정성과 지혜를 모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질높은 번역과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앞으로 도래할 통일시대를 생각한다면 북한 천도교경전에 대한 비교 연구도 함께 병행해야 한다. 천도교종학대학원의 교재로 우선은 ‘천도교학 개론’ 같은 것을 편찬하여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내외 학술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국내외 주요 대학 및 연구 기관과의 학술 교류를 통해 천도교 사상의 글로벌 보편성을 검증하고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천도교학 학회나 연구회 등 연구 네트워크를 조직·운영해야 한다. 물론 현재 운영 중인 동학학회와 연계하여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각 분야(교리, 교사, 의례, 사상사 등)별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천도교학 총서'를 발간하여 학문적 권위를 확보하고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이와 함께 천도교의 예복, 노래(천덕송과 송가), 건축 등 종교 예술과 문화적 표현을 분석하여 한국 종교 문화사 내에서의 위상도 정립해야 한다. 이러한 천도교학 정립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무엇일까? 첫째, 종교적 정체성 및 위상 강화이다. 학문적 기반 위에 교리가 정립되면, 천도교는 근대적 민족 종교라는 역사적 수식어를 넘어 현대 인류 문명의 대안을 제시하는 종교로서 새로운 위상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둘째, 대사회적 영향력이 증대될 것이다. 정립된 학문적 논리를 바탕으로 교육, 윤리, 환경, 통일 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천도교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참여와 영향력이 크게 증대될 것이다. 셋째, 천도교 세계화의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인내천, 사인여천 등 천도교의 보편적 가치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국제 학계에 소개함으로써 천도교의 세계화를 위한 단단한 발판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천도교학’ 정립으로 용시용활(用時用活)해야 할 시점이다. ‘다시 개벽(開闢)’의 정신은 단순히 과거의 구호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맞게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하는 천도교의 생명력이다. 지금은 천도교학 정립을 통해 천도교의 빛나는 사상을 현대 학문 체계 안에서 새롭게 부활시켜야 할,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다시 개벽'의 시점이다. 교단과 학계, 그리고 모든 동덕들이 힘을 모아 천도교학 정립의 대업(大業)에 매진할 때, 천도교는 민족의 구심점을 넘어 인류의 정신 문명을 선도하는 종교(=인류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천도교학 정립,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요 우리의 소명이다. 글 박돈서(선도사, 공주교구장, 감사원장대행) -
동학의 하늘, 민족의 목소리… 음악으로 다시 깨어나다지난 11월 14일 저녁, 포항 덕업관에서 열린 ‘동학 아름다운 사람들’ 공연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개최되었다. 이번 무대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동학의 핵심 정신인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라는 물음을 음악으로 체감하는 자리였다. 김현성이 첫 음을 울리는 순간, 공연장은 조용히 하나의 질문으로 채워졌다. “사람 속의 하늘은 어떻게 깨어나는가.” 절제된 조명과 담백하게 꾸며진 무대는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했다. ‘이등병의 편지’가 울려 퍼지자 객석은 각자 마음속 깊은 기억으로 이어지는 사적인 공간으로 변했고, 윤동주·이육사·한용운의 시구가 스크린에 비치며 동학의 사인여천 사상과 자연스럽게 만났다. 동학이 단순한 종교적 사상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정신적 뿌리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공연 후반부에는 새로운 흐름도 더해졌다. 김현성은 포항을 알릴 신곡 ‘과메기 노래’ 발표 소식을 전하며 지역의 삶과 정체성을 담아낼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예고했다. 동학의 정신이 인간 존엄을 묻는다면, 이 노래는 포항의 바람과 바다, 그리고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노래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관객 속으로 퍼져나갔다. 관객들의 반응은 각기 다르면서도 깊었다. 눈을 감은 노인은 오래 묻어둔 감정을 조용히 되새겼고, 청소년들은 설명하기 어려운 울림 앞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는 듯했다. 가족 단위로 온 관객들은 아이들과 함께 음악과 시가 전하는 메시지를 공유하며 공감의 시간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는 이름 그대로, 세대와 도시는 예술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번 음악제는 동학의 인간 존엄 사상, 민족시의 항일정신, 그리고 지역의 정체성을 품은 현대적 음악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의미를 확장시키는 드문 기회였다. ‘사람이 하늘’이라는 선언은 불평등과 갈등이 여전한 오늘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이며, 계속해서 묻고 답해야 할 질문임이 다시 드러났다. 공연 후 방명록에 남은 한 문장은 이 음악제가 가진 의미를 정확히 짚어냈다. “동학혁명의 피는 오늘도 불의에 저항하는 씨앗이 됩니다.” 이는 과장이 아니다. 시대는 변했어도 인간 존엄을 지키려는 마음은 여전히 필요한 과제이며, 그 정신은 예술과 시민의 공감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그날 덕업관은 작은 공연장이 아니라, 사람 속의 하늘을 확인하는 조용한 광장이었다. 예술은 화려한 언어 대신 이렇게 묻는다. “지금의 우리는 우리 안의 하늘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 옆에서, 포항의 바다와 사람을 노래할 새로운 음악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사진, 허채봉 -
동학농민혁명 131주년 아산 기념식 및 문화제 열려‘2025 동학농민혁명 계승 충남 아산 기념식 및 문화제’가 지난 11월 9일 오후 2시, 온양온천역 광장에서 아산시기념사업회 주최로 열렸다. 올해 기념식은 「1894 동학혁명에서 2025 인내천(人乃天) 응원봉 빛의 혁명까지」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장명진 아산시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기념사에서 “갑오년 동학혁명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윤석열 내란을 보국안민으로 극복한 빛의 혁명”을 강조하며, 동학혁명 2차 봉기에 대한 국가 서훈과 헌법 전문 수록을 촉구했다. 기념사업회는 당시 폐정개혁안 정신을 오늘에 되살린 ‘2025년 신폐정개혁안’을 발표하고, 참석 시민들과 함께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 사람이 곧 하늘님인 세상”을 힘차게 외쳤다. 천도교 아산시교구, 시민과 함께하는 현장 운영 천도교 아산시교구는 행사장에 ‘동학혁명을 천도교에서 이어갑니다’라는 안내판을 설치하고, 참석 시민들에게 따뜻한 커피와 음료를 제공하며 현장 참여를 도왔다. 또한 무대에서는천도교 송가 ‘동학행진곡’과 ‘동학의 딸’을 불러 큰 호응을 얻었다. 융합예술 무대 「녹두꽃, 불꽃이 되다」, 동학의 현재 가치 조명 문화제에서는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한 창작융합극 「녹두꽃, 불꽃이 되다」가 공연되었다. 북과 탈, 노래, 무용, 풍물이 어우러진 무대는 동학의 인내천 정신이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 가치로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현장을 지나던 시민들도 공연에 발걸음을 멈추고 집중해 보는 등 공연장은 활기를 띠었다. 지자체·동학단체 함께한 의미 있는 연대 행사에는 아산시 부시장, 아산시의회 의장 및 시의원들, 충남동학단체협의회, 동학실천시민행동 등 여러 동학 관련 단체가 참석했다. 광장에는 시천주, 사인여천, 척왜양, 보국안민 등 동학정신을 담은 대형 세로깃발 10여 개와 아산동학농민혁명 전개 과정을 소개하는 20여 점의 홍보판이 설치되어 시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
남해에서 펼쳐진 대동세상, 동학문화예술제 뜨거운 호응지난 11월 9일(일) 오후 2시, 경남 남해문화센터 다목적홀 및 로비에서 ‘인내천(人乃天), 모두가 어우러지는 대동세상’을 주제로 한 2025 남해동학문화예술제가 열렸다. 본 행사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오늘의 사회 속에서 다시 구현하고, 지역 시민과 청소년이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의 장을 만들고자 기획되었다. 남해군수는 축사를 통해 "남해군은 역사적으로 동학·천도교 신앙이 매우 활발한 고장입니다. 현재 천도교 박인준 교령님을 비롯해, 우리 지역에서 일곱 분의 교령을 배출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전통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나라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동학은 평등·민주·생명존중의 사상을 실천하며 큰 역할을 했지만, 해방 이후에도 그 가치가 온전히 자리 잡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남해 역시 천도교 활동이 제약을 받는 환경 속에서 조용히 신앙과 선양을 이어왔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문화·정신적 자산을 제대로 드러내고 계승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종교적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신문화로서 동학 정신을 더 크게 펼쳐야 합니다. 오늘 문화예술제를 통해 동학의 사상이 평등, 민주주의, 자연과 생명 존중의 철학으로 우리 마음에 다시 새겨지길 바랍니다. 저 또한 군수로서 이 가치가 지역에서 더욱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김환용 이사장은 "1894년 30만 명이 참여한 동학농민혁명은 이 땅을 우리 스스로 변화시켜 '사람과 만물이 평등하고 존엄한 세상'으로, '우리 공동체를 굳세게 만들어 스스로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자'는 기치로 희망의 문을 열고자 한 위대한 혁명이었다"고 평가하고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에서는 박인준 천도교 교령의 축사가 발표되었으며, 현장에는 이동희 경리관장이 참석해 교령의 메시지를 대신 대독했다. 이동희 경리관장은 “동학의 정신은 오늘 우리가 계승해야 할 시대적 가치”라는 교령의 메시지를 전달해 큰 호응을 얻었다. 박인준 교령은 축사를 통해 이번 남해동학문화예술제가 지닌 역사적 의미와 시대적 가치를 강조했다. 교령은 먼저 “남해는 동학‧천도교의 성지가 될 만큼 정신적 전통이 깊은 고장”이라며, 동학농민혁명 당시 남해 지역 인사들이 보여준 헌신과 희생, 그리고 이후 천도교의 신앙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온 사실을 언급했다. 이어 동학의 핵심 사상인 시천주·사인여천·인내천을 현대적으로 조명하며 “사람은 한울님을 모신 존재이자,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는 대동의 정신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은 군사적 실패가 아니라 한국 근대정신을 열어젖힌 정신혁명이었으며, 이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맡은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박 교령은 이번 문화예술제가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잇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현실에 세우는 데 필요한 마음을 모으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동학 사상을 지역사회와 대한민국의 정신문화 자산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행사를 준비한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남해군의회, 남해군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동학의 정신이 남해에서 다시 꽃피고 대한민국 전체로 퍼져나가기를 바란다”고 축사를 마무리했다. 역사학자 심용환 강사는 ‘동학, 시대의 소리 사람의 소리’라는 특별강연을 통해 19세기 동학운동의 개혁성과 평등 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였다. 강연에서는 특히 인내천 사상이 “모두가 존중되고 상생하는 새 사회를 여는 출발점”이라는 메시지가 강조되었다. 남해지역에서 활동하는 ‘힐링보이스' 김경훈의 노래무대가 이어졌고, 이어서 ‘2025 신폐정개혁안 선언’이 공식 발표되었다. 이 선언은 동학정신을 오늘날의 사회개혁 담론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이날 남해에서는 동학정신을 오늘의 사회적 과제로 새롭게 되살리고자 ‘동학후예의 신폐정개혁안 12개조’가 공식 발표되었다. 발표된 12개 조항은 다음과 같다. 동학후예의 신폐정개혁안 12개조 ① 대한민국 정부는 동학정신을 계승해 보국안민 정책을 펼칠 것 ② 헌법 정신에 기반한 정치를 구현하고 반헌법 세력을 엄중 처벌할 것 ③ 권력자에 의한 부정부패 범죄를 자세히 조사하고 처리할 것 ④ 재벌과 자본가들의 부정을 엄중히 처벌할 것 ⑤ 우리나라의 이익에 반해 일본과 외세와 상통하는 자를 엄벌할 것 ⑥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여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추구할 것 ⑦ 탈탄소 정책과 기후위기 대책을 적극적으로 펼칠 것 ⑧ 식량주권을 확보하고, 생명을 살리는 생태적인 농업정책을 수립할 것 ⑨ 정부는 사회의 약자에 대한 차별금지법을 신속히 제정하고, 여성과 청소년, 노인과 약자에 대한 국가 돌봄을 적극적으로 실시할 것 ⑩ 무한경쟁 교육을 강요하지 말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존중하는 교육을 할 것 ⑪ 수도권과 농어촌 차별을 해소하고 지역 균형 발전을 적극적으로 도모할 것 ⑫ 그리하여 사람과 만물이 존엄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 것 한편, 본 행사는 남해군민과 청소년, 예술인이 함께한 가운데 ‘인내천 모두가 어우러지는 대동세상’을 주제로, 남해의 역사와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한 풍성한 프로그램들로 채워졌다. 앞서 진행된 남해동학예술제 백일장은 지역 청소년들이 동학 사상과 인권의 가치를 스스로 생각해보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 마련되었다. 으뜸상에는 『동학농민군 대장 녹두장군 마법의 두루마리』를 쓴 최해린(남해여중 2학년) 학생이 선정돼 작품을 직접 낭독하며 큰 박수를 받았다. 버금상은 정지후(남해여중 1학년) 학생의 『동학에서 촛불까지』, 입금상은 김예은(남해여중 1학년) 학생의 『우리는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을 기억해야 합니다』가 각각 수상했다. 시상은 김환용 이사장이 직접 상장과 부상을 전달하며 청소년들의 참여에 감사와 격려를 전했다. 공연과 함께 행사장 곳곳에서는 다양한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박금만 작가의 목탄화,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원들의 캘리그라피 작품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동학 농민군의 정신과 남해 역사문화의 정체성을 예술로 풀어낸 이번 전시는 ‘예술이 곧 기록’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올해 남해동학문화예술제는 청소년부터 예술가, 군민 참여까지 폭넓은 참여가 돋보인 행사로, 남해의 역사문화 콘텐츠가 지역 사회와 공감 속에서 재해석되고 확장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사음악회 〈모심의 길, 동학의 노래〉가 무대에 올랐으며, 가수 문진오와 작가 신채원이 함께 창작곡 <빛이 된 사람 해월 최시형>, <남해바다 시천주>, <보성사 이종일 바람의 혁명>을 비롯하여 <죽창가>, <내 나라 내 겨레>, <돌아와요 부산항에>, <홀로 아리랑> 등 서사와 노래가 어우러지는 형식으로 동학농민혁명 정신과 ‘모심’의 철학을 예술적으로 풀어냈다. 특히 ‘남해바다 시천주’라는 창작곡을 통해 남해 동학의 역사적 흐름과 신앙적 정신을 담아내어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이번 문화예술제는 지역공동체가 함께 ‘대동(大同)’의 공동체적 비전을 공유하는 장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인내천 사상을 지역문화와 시민참여 중심으로 되살리는 시도였다”고 평가된다. 또한, 청소년 부문의 참여율이 높았다는 점에서 동학공동체의 미래세대 연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해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폐회 선언에서 “남해동학문화예술제를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소회를 밝혔다. 이어 “우리는 사람과 만물이 조화롭고 평등한 남해, 서로의 다름을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남해를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동학의 근본정신인 *인내천(人乃天)*을 오늘의 남해 공동체 정신으로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선언이었다. 2025 남해동학문화예술제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동학의 핵심정신을 지역과 시민의 일상 속으로 불러온 의미 있는 자리였다. 앞으로도 이 행사가 단발성 축제가 아닌 지속가능한 지역문화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주최·참여자·시민이 함께 실천해 나가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
제64차 천도교연원회 동원포 모임 개최연원회 동원포(도정 철암 김영욱)는 11월 9일 오후 1시부터 부산시교구에서 32명의 관내 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64차 동원포연원회 회의를 개최하고 동원포 연원의 발전과 교화 사업을 위한 현안을 논의하였다. 이날 연원 모임에는 부산과 경주, 창녕, 영산 등 경상남북도는 물론 서울에서도 참여하여 심화기화의 흐뭇한 장을 연출하였다. 정신당 박차귀 도훈의 집례로 각 교구 교역자 및 참석 동덕 소개에 이어 올해 환원하신 고암 한한숙 선도사(서울)와 수신당 박선희 선도사(부산시)의 성령출세를 기원하는 추모 심고를 한 후 연원회를 개회하였다. 연원회는 철암 김영욱 도정의 개회사, 휘암 하명출 고문의 격려사에 이어 현황 및 경과보고, 지역별 동정 보고에 이어 의안을 심의하였다. 김영욱 도정은 인사말에서 “연원회 모임은 우리 천포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유대를 강화하며, 포덕교화의 정보도 교환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라면서 이를 위해서 “매매사사 한울님께 심고 드리고, 오관을 생활화해서 한울님을 염념불망, 영세불망하는 수도생활을 해 나감으로써 한때 두 분의 도정을 모시던 활발한 모임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하였다. 제1호 의안으로 포덕,교화 방안을 협의하여 사인여천의 마음으로 신입 교인에게 늘 관심을 갖고 신앙 안내에 정성을 다하자고 결의하였다. 제2호 의안으로 유대강화, 조직 활성화를 위하여 정기 연원회 모임 참여를 독려하고, 다음 번 모임 때는 더 많은 소식과 성과들을 보고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결의하였다. 박차귀 도훈은 “이번 모임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환담을 나누며 모범적인 동원포가 되기 위해 심기일전 할 것을 다짐하는 장이 되었습니다. 모두들 아쉬워하며 헤어지면서 다음 모임을 기약하였습니다.” 동원포는 포덕 120년(1979) 5월 20일 경암 김경태 관내와 석암 성낙헌 종법사 관내 교인을 통합 개편하면서 연비모임을 시작하고 포덕 123년(1982) 11월 9일 ‘동원포(東源布) 이름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포덕 126년(1985) 12월 25일에는 일본 신호교구가 수보 편입되어 현재 7개 지역을 교도하고 있다. 사진 및 자료 제공 박차귀 부산시교구장 -
“동학 정신을 우리 삶의 가치철학으로 가져가는 것, 그것이 제 꿈이자 바람”나이 마흔에, 서울살이를 끝내고 강원도 홍천 서석면에 새로 둥지를 튼 권소영 대표는 원래 동학과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프랑스 출장길, 관계자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친 프랑스혁명을 뛰어넘어, 세상 모든 존재의 존엄성을 인정한 동학사상에 대해 현지인들에게 설파한 뒤, 그다음 날 회의가 믿기지 않을 만큼 술술 풀렸던 경험이 동학과의 인연이라면 인연일 터였다. 한데 2007년, 그가 살러 온 홍천 서석면 풍암리가 동학혁명 전적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 인연이 오려는 길이었구나.” 하고 직감했다. 홍천에 내려온 뒤에는 마을 주민들 요청으로 4년 동안 아이들에게 동학과 동학혁명을 이야기했다. ‘시천주’ 사상에 담겨 있는 존엄과 평등, 공존과 존중을 가르쳤다. 홍천에 자리 잡을 때만 해도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코칭도 하고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를 키우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2017년, “동학 사업을 좀 키워보자”는 서석면 면장의 제안으로 국가유산청 공모사업에 나선 것이 본격적으로 ‘동학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됐다. 이후 홍천 서석면 풍암리 동학혁명군 전적지를 알리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기 시작해, 2024년까지 동학혁명 전적지 탐방, 휘호대회, 백일장, 보드게임, 메모리카드, 동학탑놀이, 동경대전·용담유사 목활자 퍼즐, 선양극과 추모음악회, 명상과 심리 치유 프로그램 등 수많은 콘텐츠를 탄생시켰다. 그 무수한 콘텐츠의 아이디어 창구이자 이를 실제 구현으로 이끈 장본인이며, 11월 6일 발대식을 갖는 '강원동학21'을 이끌어나갈 권소영 대표를 만나, 그의 삶과 동학, 앞으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진행: 노은정 전 편집장) ▶ ‘강원동학21’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와 단체 설립 과정, 지금까지의 주요 활동을 소개해 주신다면? ‘강원동학21’이라는 이름에 세 가지 축을 담았습니다. 하나는 강원 지역 동학의 역사예요. 인제, 정선, 영월, 평창, 원주, 강릉, 고성, 홍천 등 곳곳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동경대전」이 발간되고 보국안민의 기포가 다시 일어난 지역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동학의 핵심 사상, 시천주와 삼경사상, 인내천과 사인여천 정신입니다. 셋째는 이 사상을 21세기 현재의 언어와 삶으로 풀어가겠다는 목표입니다. 그래서 ‘강원동학’ 뒤에 ‘21’을 붙였습니다. 제가 홍천에 온 지 20년이 되어 갑니다. 2017년에 당시 서석면 면장님이 제가 기획·컨설팅하는 걸 알고 “서석면에 동학혁명 유적지가 있는데, 이걸 제대로 키우고 싶다”며 동학 관련 사업을 제안하셨어요. 당시 서석면동학혁명추모사업회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주축 어르신들만 남아서 사실상 활동이 거의 없던 상태였어요. 한데 공모사업을 하려면 단체에 소속돼야 하니, “단체 이름을 좀 빌려 달라”고 요청했고, 그렇게 해서 2017년 국가유산청 지역유산활용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동학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17년부터 2024년까지 14개의 프로그램 개발은 거의 완성된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동학 정신을 서예로 표현하는 전국 휘호대회와 학생들이 동학농민혁명 과정을 공부하며 글을 쓰는 백일장, 역사 흐름과 인물을 게임으로 배우는 보드게임과 메모리카드, 시천주·존엄·존중·공경 같은 키워드를 몸으로 익히는 ‘동학탑놀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목활자본 퍼즐과 인쇄 체험, 지역주민이 만든 선양극과 추모음악회, 동학 아카데미, 초등학교 체험, 중학교 자유학기제 프로그램, 동학사상과 명상을 결합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과 동학군 복장을 입어보고 행진하는 체험과 동학 관련 유튜브와 캐릭터, 이모티콘 대회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초등학생, 중·고생, 학부모, 마을 주민과 군인들까지 합치면 대략 5천 명 정도가 홍천 동학과 동학혁명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 기반을 바탕으로, 홍천을 넘어 강원 전역으로 확장하기 위해 ‘강원동학21’이라는 새 이름으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지금까지 개발해 오신 프로그램이 매우 다양합니다. 휘호대회, 보드게임, 심리 치유 프로그램, 음악회 등 조금 더 자세한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는 기획을 할 때 ‘한정된 틀’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산 1,000만 원이면 2,000만 원 이상의 효과를 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늘 고민합니다. 그래서 동학 프로그램들도 교육, 놀이, 예술, 심리를 한데 묶어 설계하고 있어요. 먼저 휘호대회는 강원도 교육감님께서도 칭찬하신 행사입니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과정을 공부하게 되거든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금 누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해 보게 되고, 글씨에 담긴 마음도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다섯 번 진행했습니다. 심리 치유 프로그램은 동학사상을 현대 심리학 기법과 결합한 것입니다. 참가자들이 시천주·삼경사상, 수심정기를 체험형으로 접하도록 설계해서, 프로그램이 끝나면 마음이 굉장히 차분해졌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습니다. 이건 제가 아이들 코칭과 부모 상담을 오랫동안 하면서 쌓은 경험과 동학 공부가 만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축이 음악회입니다. 저는 어릴 때 클래식을 전공해볼까 고민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해마다 동학 스토리텔링 음악회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11월 6일 강원동학21 발대식에서도 음악과 동학 이야기를 엮으려 합니다. 이번 행사에서 첫 곡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시작합니다. 인트로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돌아보게 되는 자각의 느낌이 있거든요. 이어서 「나 하나 꽃 피어」라는 가곡이 불립니다. 나 혼자만 피어서는 숲이 되지 않지만,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꽃을 피울 때 어떤 세상이 열리는지를 동학 정신과 연결해 설명하지요. 또 영화 「미션」에 나오는 「가브리엘스 오보에」를 들려줍니다. 이 곡을 들으며 동학군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존엄과 평화의 가치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나눕니다. 이렇게 곡마다 스토리텔링 해설을 붙입니다. 음악적 분석만이 아니라 이 곡이 동학과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감응 매치하여 이야기하면, 관객들이 깊게 공감합니다. “난 동학은 어려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들으니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시죠.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합니다. 밥을 먹을 때 “농부가 쌀을 안 만들었으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엄마가 밥을 해 줄 때와 안 해 줄 때의 차이, 그 사이의 정성과 마음을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면, 생각의 폭과 깊이가 확실히 달라집니다. 저는 그 과정을 ‘동학식 수심정기 교육’이라고 부릅니다. ▶ 최근 홍천군의회 본회의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지원 조례안’이 부결되면서 지역사회에서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떤 생각이 들었고, 이후 어떤 대응을 준비하고 계신지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말씀드린 대로 어이없기도 하고, 화도 많이 났습니다. 그동안 쌓아 온 기념사업과 주민들의 호응, 전국적인 평가를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학 정신을 이야기하는 내가, 동학이 말하는 수심정기와 시천주를 어느 만큼 실천했는가를 먼저 돌아보게 됐습니다. 일부에서는 군의회 내 갈등, 몇몇 기사에 따른 감정적 반향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동안 해 온 활동의 진정성과 필요성을 더 깊이 이해시키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금은 2026년 재발의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군의회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기념사업의 의미와 내용, 강원특별자치도 조례와의 연계, 홍천이 갖는 상징성을 차분히 설명할 예정입니다. 또 하나는 추모일에 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추모일이 양력 10월 23일로만 알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음력 10월 23일입니다. 올해부터는 이 부분도 바로잡고, 음력 추모일을 기준으로 강원동학21이 준비하는 추모·기념 행사를 체계화해 보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논쟁도 결국 조금 더 좋은 길로 가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보고, 끝까지 책임 있게 풀어가려 합니다. ▶ 조례 제정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조례가 통과될 경우 지역사회와 동학 기념사업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시는지요? 조례는 결국 공공의 약속입니다. 강원특별자치도에는 이미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조례’가 있어서, 큰 틀에서 강원동학21 사업을 하는 데 제도적 장애는 없습니다. 하지만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의 실제 무대는 홍천군입니다. 홍천군에 조례가 제정되면, 다른 시·군에 선도적인 모범 사례가 될 수 있고, 기초자치단체가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과 동학 정신 계승을 법적 책무로 인식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민간의 열정과 자발적 재능기부에 의존한 측면이 크다면, 조례 제정 이후에는 예산·인력·교육·관광 정책과의 연계가 훨씬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동학 정신을 강원도 정체성의 한 축으로 삼겠다는 공적 선언이 되는 셈이지요. ▶ 강원동학21이 비영리 사단법인, 궁극적으로 재단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추진 상황과 법인화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지요? 현재는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고, 최종 목표는 재단법인화입니다. 사단법인은 사람 중심의 조직이고, 재단법인은 재정과 자산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플랫폼입니다. 강원동학21이 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재단법인이 꼭 필요합니다. 지금은 강원도 곳곳에서 동학과 동학 정신에 공감하는 분들을 모아 ‘강원동학21 재단법인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있습니다. 이 법인을 통해, 재정적 안정화를 이루고, 동학 해설사, 강사, 프로그램 기획자 등 전문 인력을 양성하며, 학교·지자체·문화재단·시민단체·천도교 교구와의 협력 구조를 정비해, 동학 정신을 강원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합니다. 특히 저는 천도교 입교 여부와 상관없이, 현대화된 동학 정신을 삶의 철학으로 전하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의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동시에 천도교중앙총부와도 마인드 교육, 직무·인성 교육 등에서 협력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천도교도 함께 알려지고, 강원도의 정체성 확립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강원 지역의 동학 유적을 잇는 ‘동학길’ 사업과 2027년 해월 최시형 신사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준비 중인 계획이 궁금합니다. 강원동학21이 준비하는 큰 축 중 하나가 ‘강원 동학길’ 역사 투어예요. 원주–홍천–인제 권역, 홍천–평창–횡성 권역, 홍천–고성–강릉 권역, 홍천–영월–정선–원주 권역으로 나누어 1박 2일 또는 2박 3일 코스를 구상하고 있어요. 단순히 “여기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설명하는 수준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 전개 과정과 시천주·삼경사상, 인내천·사인여천의 의미를 몸으로 느끼는 여행이 되도록 설계 중입니다. 특히 2027년 해월 최시형 선생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해월 선생 평전을 쓴 분들의 책을 거의 다 구입해 읽었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해월 신사의 삶과 사상을 담은 선양극·뮤지컬 시나리오를 세 편 정도 써 두었고, 앞으로 검토를 받아 무대에 올려보려 합니다. 해월 선생이 걸었던 길을 실제로 따라가며, 공연과 강의, 명상과 음악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해월의 길을 따라서’라는 이름으로 강원도와 함께 개발하는 것이 목표예요. 이 과정에서 춘천교구, 원주교구, 강릉교구 등 강원 지역 천도교 교구들과의 네트워크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합니다. 각 교구가 지닌 역사와 인적 자원을 살리면, 교구 입장에서도 창조적인 선도 역할을 할 수 있고, 강원동학21은 종교색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동학·천도교의 가치를 넓게 알릴 수 있다고 봅니다. ▶ 여러 자리에서 “정치는 멈춰도 동학 정신은 멈출 수 없다”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동학 정신은 어떻게 되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동학은 1860년 수운 최제우 선생께서 창도하신 이후, 해월 최시형 선생, 의암 손병희 선생으로 이어지는 차원이 다른 생각의 가치혁명이었습니다. 희망이 거의 없던 시대에 ‘하늘이 사람 안에 있다(시천주·인내천)’는 말은 글자 그대로 빛이었죠. 지금 우리는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누리는 것 같지만, 자기 삶의 주권을 온전히 행사할 자질은 오히려 부족해진 부분을 많이 보곤 합니다. 무엇이 잘못되면 환경과 타인 탓만 하고, 정치·사회적 문제도 내 마음과는 별개라고 생각하지요. 시천주 사상은 한울님을 모시기 위해 수심정기,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로 세우라고 가르칩니다. 삼경사상은 만물을 공경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저는 이걸 오늘의 언어로 정리하면 존엄, 존중, 공존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존엄한 한울님으로 여기며 수심정기를 실천하고, 타인과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기르고, 함께 어우러지는 공존을 목표로 삼는 것.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소통 이전에 존중이 없습니다. 만나서 각자 자기 말만 하고 돌아가면서 그걸 대화라고 부르기도 해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과 감정이 앞서다 보니 조율과 조화가 설 자리가 적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학 정신을 AI 시대, 포스트휴먼 시대의 K-철학, K-동학으로 정리하고 싶어요. 인간의 존엄과 마음의 평화, 타인과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동학 정신이 오늘의 사회 가치로 뿌리내린다면, 정치적 양극화와 혐오, 차별, 공동체 붕괴 같은 문제의 뿌리가 조금씩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어려움, 그리고 시민사회나 지방정부, 중앙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서석면동학혁명추모사업회는 1976년부터 있었지만, 오랫동안 일부 주축 인물 중심으로 돌아가며 조직의 임무와 기능, 목표와 가치가 거의 사장된 상태였어요. 2018년부터 제가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공모사업을 따오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예산을 끌어오며 조직의 틀을 새로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서석면 원주민도 아니고, 여성, 그것도 아줌마라는 이유로 괜한 트집과 반발을 겪기도 했습니다. 서석면 안에만 동학을 가둬두고 싶어 하는 분들은 “왜 홍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느냐, 왜 강원 전체를 이야기하느냐”며 반대하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같이 일하자”고 나서는 사람보다, 멀찍이 서서 지켜보거나 트집을 잡고 험담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참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시·군이나 도 단위에서 이 사업을 바라보는 분들은 ‘너무 필요한 일’이라고 평가해 주시더라고요. 사회 문제와 조직 문제로 고민하는 리더들은 동학 정신 계승 사업을 보면서 “우리 지역에도 이런 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가까이에서는 홀대받고, 멀리서는 부러움을 사는 모습이 종종 헛헛하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앞으로는 강원동학21 발대식을 계기로, 강원 지역의 뜻있는 인재와 명망 있는 추진위원들을 적극적으로 모실 생각이에요. 시민사회에는 “이건 종교 이야기가 아니라 삶과 공동체의 가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고, 지방정부에는 “정신문화의 토대가 튼튼해야 지방자치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앙정부에는 동학 정신을 전국적 가치로 확산하는 데 꾸준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드리고 싶고요. ▶ ‘동학’과 ‘예술’을 결합한 문화기획이 권 대표님만의 강점인 듯합니다. 앞으로 꿈꾸는 음악·예술 프로젝트와 5년 안에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지요? 저는 동학을 책 속의 사상으로만 두고 싶지 않아요. 노래와 연극, 클래식과 국악, 뮤지컬, 영상과 유튜브 채널 등 사람들이 실제로 감동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형식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이미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여러 공연과 강연, 프로그램을 올리고 있고, 이번 강원동학21 발대식에서도 클래식과 동학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문 음악인들이 “우리끼리만 좋다”고 만족하는 데 머무르면 확장이 안 된다고 늘 말합니다. 예술은 결국 남이 듣고 감동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5년 안에, 강원동학21을 재단법인으로 세우고, 해월 최시형 선생 탄신 200주년에 맞추어 해월 선생 선양극·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고, 정치·사회·교육·문화·예술 전반에 동학 정신을 녹여낸 가치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수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 ‘21세기형 동학운동’을 거창한 혁명으로 보지 않습니다. 각자가 스스로를 존엄한 한울님으로 여기고, 그 눈으로 타인과 자연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이미 개벽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명상도 결국은 ‘자기라는 한울이 자기 마음을 경계하는 과정’이니까요. 그렇게 보면 매일이, 지금 이 순간이 이미 동학운동의 현장입니다. 강원동학21이 그 현장에서 작은 촛불이 될 수 있다면,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강원도에는 동학으로 공동체를 다시 세우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기억하고 느리지만 또 저 같은 분이 나오셔서 이어간다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 기억을 남기는 일도 있지만 누군가의 사명으로 넘겨주는게 제 마지막까지의 과업이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습니다. -
[칼럼] 수운대신사 탄신 201주년의 다차원적(多次元的) 의미올해 10월 28일은 동학·천도교를 창명한 제1세 교조 수운 최제우 대신사(水雲 崔濟愚 大神師) 탄신 201주년을 맞는 매우 역사적인 날이다. 수운대신사의 탄생은 단순히 한 위대한 인물의 출현을 넘어, 혼란과 절망의 시대를 넘어 인류의 새로운 정신 문명을 열어젖힌 ‘다시 개벽(開闢)의 선언’이자 ‘시천주(侍天主) 시대의 서막’이었다. "사람의 몸에 한울님을 모셨다"는 시천주(侍天主)의 진리는, 19세기 말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문명사적 위기 속에서 동양의 오랜 문화적 자양분을 바탕으로 우리 땅에서 꽃피운 ‘자생적 근대화의 원천’이었다. 수운대신사의 탄생이 지닌 심오한 의미를 우주적, 지구문명적, 한국사적, 현대적, 미래적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하여 깊이 있게 되새겨보고자 한다. 먼저 우주적 차원에서 살펴본다면 한마디로 ‘한울님의 강림과 무극대도(無極大道)의 선포’라고 말할 수 있다. 수운 대신사의 탄생은 우주적 차원의 거대한 전환을 예고한다. 1860년(경신년) 수운대신사가 상제(上帝, 한울님)으로부터 직접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은 것은, 우주의 근원적인 이치와 진리가 인간 세상에 현현(顯現)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천명(天命)의 재확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유교적 이념 속에서 추상화되었던 '하늘'을 인격적인 한울님으로 재정립하고, 그분과의 직접적인 종교적 (신비) 체험을 통해 '천명'을 새롭게 받았다. 이는 인간의 내면에 영원히 존재하는 신성(神性)인 천주(天主), 즉 한울님을 모시는 시천주 사상의 출발점이 된다. 또한 ‘다시 개벽(開闢)’의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수운대신사는 우주의 순환이치에 의한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도래를 예언하며, 낡은 질서와 문명이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도덕 문명이 열릴 것임을 선포하였다. 이는 단순한 서구적인 종말론이 아닌, 인간의 도덕적 완성을 통해 이 땅에 지상천국을 건설하려는 능동적인 개벽 의지였다. 다음으로 지구문명적 차원에서는 ‘문명사적 위기를 극복할 동학(東學)·천도교의 창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세기 중엽은 서양 열강의 침탈이 극심해지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였다. 서양의 과학 문명과 천주교(=서학西學)가 동양의 전통적 가치관을 뒤흔들던 문명사적 위기 속에서 수운대신사는 동학(東學)·천도교를 창명하였다. 이는 서학에 대한 동학·천도교의 대응으로 볼 수 있다. 동학·천도교는 서학에 대한 자주적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서학이 하늘의 권위를 교조적으로 강조했다면, 동학·천도교는 "그 도(道)는 같으나 이치(理)는 다르다"며 내재적 천(天) 사상인 시천주를 통해 민족적 자존을 지켜내고자 했다. 또한 이는 새로운 세계관의 제시라고 설명할 수 있다. 동학·천도교는 유(儒), 불(佛), 선(仙)의 삼교 회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기존 사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드높이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제시했다. 이는 동양 정신 문명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지구적 차원의 정신 혁명이었다. 셋째, 한국사적 차원에서는 ‘민족 자주 정신의 고취(鼓吹)와 만민 평등의 기치(旗幟)’로 말할 수 있다. 수운대신사의 탄생은 봉건 사회의 모순과 외세의 위협 속에서 신음하던 우리 민족에게 자주와 평등의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었다. 이것은 보국안민(輔國安民)과 광제창생(廣濟蒼生)을 내세운 것을 말한다. 수운대신사는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케 하며(보국안민)", "널리 창생을 구제한다(광제창생)"는 기치를 내걸고 사회 변혁을 위한 종교적 실천을 시작하였다. 이는 당시 백성(=민중)과 유리된 봉건 지배층의 사상과는 완전히 대치되는 진정한 민본주의 사상이었다. 또한 이는 신분 타파와 인간 존중을 의미한다. 시천주 사상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절대적인 만민 평등 사상으로 직결된다. 양반과 상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인간이 본래부터 존엄한 존재임을 천명함으로써, 조선 사회의 신분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사회혁명(=사회개벽)의 씨앗이 되었다. 이후 동학농민혁명과 3·1독립운동 등 근대 민족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넷째, 수운대신사 사상의 현대적 가치를 ‘시천주, 다시 개벽, 인내천’을 중심으로 생각해본다. 한마디로 수운대신사가 선포한 사상은 16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대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시천주(侍天主)’ 사상의 현대적 가치는 ‘정신 문명의 회복과 마음의 평화’라고 표현할 수있다. 시천주는 외부에 존재하는 신이 아닌, 내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시고 그분의 지혜와 덕을 스스로 실현해 나가는 내재적 신앙을 강조한다. 이는 복잡하고 불안한 현대인들에게 자주적인 정신 문명을 확립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구도의 길을 제시한다. 수운대신사가 가르친 주문(呪文)과 심신 수련법은 현대인의 정신 건강 증진과 인격 수양에 큰 도움을 준다. 시천주 주문을 통한 한울님과의 합일은 곧 참된 자아의 발견이며,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밑바탕이 된다. 다음으로 ‘다시 개벽(開闢)’ 사상의 현대적 가치는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과 지속 가능한 삶’이라 말할 수 있다. 수운대신사가 제시한 ‘다시 개벽’ 사상은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 중심주의가 낳은 ‘인류세(人類世)’의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생명 살림의 철학을 내포한다. 하늘의 조화(造化)가 만물에 내재한다고 보았기에,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모심과 섬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생태적 세계관, 생명 살림의 철학을 제시한다. 동학·천도교의 핵심 교리인 모심(侍)은 한울님을 모시듯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돌보며(養) 살리(生)는 ‘모심과 살림’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이는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존의 윤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인내천(人乃天)’ 사상의 현대적 가치는 ‘인간 존엄과 민주주의 완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해월 신사의 사인여천(事人如天)과 삼경(三敬)을 거쳐 의암 성사의 인내천(人乃天)으로 정립된 사상은 "사람이 곧 한울"임을 선언한다. 이는 모든 인권과 민주주의의 근본 정신인 ‘인간 존엄성’을 종교적, 철학적 차원에서 최고 가치로 확립한 것이다. 이는 참된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볼 수 있다. 인내천은 국가의 주인은 백성임을 뜻하는 후천개벽 사상과 맥을 같이하며, 현대 민주주의가 지향해야 할 참된 ‘국민 주권’의 가치를 제시한다. 이는 단순히 정치 제도의 문제가 아닌, 사람을 하늘처럼 대하는 상생(相生)의 윤리를 요구한다. 다섯째, 수운대신사 탄생의 미래적 전망은 한마디로 ‘인류 보편의 도(道)로써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수운대신사의 탄생과 동학·천도교의 창명은 인류 미래 문명의 방향타가 될 것이다. 동학·천도교는 더 이상 한국만의 종교가 아닌, 전 인류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인 진리, ‘인류교(人類敎)’로서 그 가치를 확대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 사상은 국가, 민족, 종교, 이념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존엄하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이 사상을 통해 인류는 근본적인 상호 존중과 평화 공존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서구 물질문명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지금, 수운대신사의 ‘다시 개벽’ 사상은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이루는 후천의 새 문명, 즉 상생적 생태문명(=지상천국)을 건설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동학·천도교의 ‘모심과 살림’의 정신은 인류 공통의 위기인 기후 및 환경 문제, 빈곤,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지구공동체(=지구행성)을 화합으로 이끄는 지혜의 보고로서 세계에 기여할 것이다. 동학·천도교는 인류가 한울님을 모시고(侍天主), 사람이 곧 한울임을 깨달아(人乃天), 이 세상에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개벽세(開闢世)’의 비전을 제시하여 장차 인류의 정신을 인도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수운대신사 탄신의 의미는 ‘인류 희망의 등불’로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수운대신사는 1824년 10월 28일,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동북아의 끝 조선 땅 경주에서 탄생하였다. 태어나는 날 구미산은 3일간 울어 세상에 신인(神人)이 탄생했음을 알렸다. 수운대신사 탄신의 의미는 어둠 속을 헤매던 인류에게 스스로 한울임을 깨닫고〔自天自覺〕, 새로운 세상〔後天, 지상천국〕을 열어가도록〔開闢〕 ‘희망의 등불’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수운대신사의 천도(天道)에 대한 깊은 가르침은 우리 천도교인이 나아가야 할 길이고, 나아가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진리이며, 앞으로 본격적으로 전개될 우주시대에 가장 적합한 종교(宇宙敎)인 것이다. 우리는 이 뜻깊은 수운대신사 탄신 201주년을 맞이하여 수운대신사의 숭고한 정신을 깊이 새기고, 시천주와 인내천의 참뜻을 각득(覺得)하여 새로운 상생적 생태문명(=지상천국)의 건설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공암 박돈서(선도사) -
제131주년 제35회 태안동학농민혁명군 추모문화제오는 10월 29일(수) 오전 10시 20분, 충남 태안군 태안백화산 추모탑과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서 ‘제131주년 제35회 태안동학농민혁명군 추모문화제’가 열린다. 이번 행사는 박인준 교령이 참석하여 추모사를 할 예정이며, 동학농민혁명 태안군유족회(회장 문영식)와 동학농민혁명 태안군기념사업회(회장 문태식)가 공동으로 주최한다. 행사는 1894년 10월 29일, 일제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봉기한 태안 동학농민군의 항일무장투쟁정신을 기리고, 자유와 평등, 인간 존엄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한 뜻깊은 자리로 마련된다. 특히 올해는 태안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와 정신을 집대성한 『태안동학농민혁명사』 출판기념 행사가 함께 진행되어,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자주·평등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릴 예정이다. 문영식 회장은 "돌아보니 우리 태안이 역사의 전면에 나선 일은 없었습니다. 동학의 종지 인내천 사인여천 정신을 바탕으로 싸우고 싸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태안인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태안의 동학농민혁명의 역사가 소중합니다."라고 말하며, “동학농민혁명은 자유와 평등, 인간 존엄을 위한 투쟁이자, 평화적 삶을 향한 민중의 역사적 외침이었다”며 “131년이 지난 오늘, 그 정신을 다시 일깨워 미래세대에게 계승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 일정은 다음과 같다. 일시: 2025년 10월 29일(수) 오전 10시 20분~12시 30분 장소: 태안백화산 추모탑 및 태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버스운행* 10월 29일(수) 출발시간 07시 30분 / 천도교중앙총부 수운회관 (10시 30분 태안동학기념관 도착) 문의 : 010-6432-5228 (문영식 동학농민혁명태안군유족회장) 이번 행사는 동학농민혁명군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다지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 천도교 교령사 예방… “인내천은 헌법 제10조와 통한다”포덕 166(2025)년 10월 23일(목) 오전 10시, 국민통합위원회 이석연 위원장이 천도교중앙총부를 방문해 박인준 교령을 예방하고 환담했다. 이 자리에는 종무원장과 각 기관장들이 배석했으며, 국민통합과 종교의 공공적 역할을 주제로 심도 있는 대화가 이어졌다. 이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오늘의 한국 사회는 정치적 분열이 심각하며, 그 여파가 사회·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이념과 지지 대상에 따라 원수처럼 대립하는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통합이란 획일적으로 묶는 것이 아니라,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며 공존의 길을 찾는 것”이라며 “헌법 제10조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은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 사상과 깊이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인준 교령은 “종교의 본래 사명은 갈등을 치유하고 상생을 도모하는 데 있다”며 “보국안민(輔國安民)과 광제창생(廣濟蒼生)의 정신으로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종교의 길”이라고 답했다. 또한 “천도교는 나라를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내해 왔으며, 좋은 정치를 하는 정부에는 협력하고, 잘못된 정치에는 분명히 지적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자 정신”이라고 밝혔다. 박 교령은 특히 “‘사람을 섬기되 하늘같이 섬기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가르침만큼 위대한 말씀은 없다”며 “정치도 백성을 하늘같이 섬기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환담에서 양측은 천도교의 역사적 역할과 종교의 국민통합적 사명,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인내천 사상을 교육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석연 위원장은 “정치가 국민을 편가르기식으로 몰아가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며 “종교 지도자들께서 국민 통합의 관점에서 따끔한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끝으로 그는 “국민통합위원회는 앞으로도 종교계와 함께 국민 화합의 길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많이본뉴스
많이 본 뉴스
- 1 성지윤 동덕, 신간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과 천도교 교육활동』 출간
- 2 민족자주·평화 실현의 길 모색
- 3 수운 최제우 대신사 흉상 제막 봉고식, 11일 울산 여시바윗골에서 봉행
- 4 "동학은 나와 우리를 다시 찾는 길입니다" 성강현 교구장의 동학 연구와 삶
- 5 On Propagating Truth No.4
- 6 박인준 교령 포덕으로 김성군 해운대구의회 부의장 동천교구에 입교
- 7[특별기고] 통권 900호, 한 세기를 건너온 이름 ‘신인간’
- 8 자인현(玆仁縣) 후연주점(後淵酒店)
- 9 포덕 166년 11월 30일 천도교중앙대교당 시일설교 "13관법 : 무극대도"
- 10[특별기고] 『신인간』 통권 900호 특집 - 권두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