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포덕166년 2025.12.14 (일)
'관동대지진'검색결과 - 전체기사 중 5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천도교 도쿄종리원 박사직이 귀국할 때 동료의 송사에서 “대지진! 대지진!! 일본 수도의 대지진 당시에 말도 모르는 백의동포가 좌로도 우로도 피할 곳이 없이 가진 발광을 다부림녀서 혀를 빼어 물고 눈알이 꿰어지는 뭇(衆) 죽음을 당할 때에 선생의 환장된 가슴에 쓸쓸한 암흑 속에서 희미한 등불을 손에 들고 동포의 뼈를 한 토막, 두 토막 주워 모으며 돌아가던 그때가 이제에 생각하면 눈물이시겠지요”라고 한 바 있다. 이는 당시 이재동포위문반에 참여한 바 있는 박사직의 반응이 아닐까 한다. - ...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은 수많은 희생을 남기고 조선인 학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 동경에는 천도교 해외 거점인 동경종리원이 있었는데, 지진과 화재에도 무사히 보존되어 이재동포위문반의 임시사무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희생자 조사와 피해 동포 구호 활동이 이루어졌다. 1924년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는 1주기 추도식이 열렸고, 지난 2023년에는 100주기 추모문화제까지 개최했다. 본 연재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 가진 상징적 기억의 의미를 탐색하고자 한다...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년 추모문화제가 지난 9월 10일(일) 저녁 6시30분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열렸다.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 당시 천도교동경종리원은 희생자조사를 했던 이재동포위문반의 임시사무소로써, 희생자 조사와 발표를 주도적으로 실행하였다. 현재 공식집계 6,661명의 희생자는 이재동포위문반이 독립신문에 발표한 기록으로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 1924년 1주기 추도회를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거행할 수 있었던 것은 천도교가 그 당시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자 했던 실천의 방법이...
노찾사 출신 가수 겸 작곡가 문진오가 1923 관동대지진 100주년, 78주년 광복절 맞이 독립운동가의 노래 콘서트를 연다.가수 문진오는 해마다 3.1절과 8.15광복절에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정신을 기억하는 공연을 해왔다.올해는 1923년 관동대지진 100주년과 78주년 광복절 맞이 공연으로 '다시 찾은 빛-열림'이라는 주제로 공연을 앞두고 있다.모두 '한 사람들'의 이야기깨어있는 한 사람들의 묵직한 '한 걸음들'이 역사를 바꿔왔다.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만세를 부른 사람들이 있었고, 격문을 써 내려간 사람들이 있었고, '사람이...
▪ 동학농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을 둘러싼‘일본인의 눈에 벗어난’ 한국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다 저자 와타나베 노부유키의 질문은 이렇다. “한국과 일본은 왜 역사를 두고 다투는가?”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유권 등의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은 오랜 세월 갈등을 겪었다. 서로를 향해 혐한과 반일의 감정을 서슴지 않고 드러낸다. 왜 다투는 걸까?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역사 인식의 근원은 무엇인가? 역사 전문 기자로서 40년간 일선에서 활동한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스스로...
신인간 12월호(900호) 표지 “우리가 바라는 바는 오직 ‘신인간’의 창조이다.” 포덕 167년 4월 1일 발행된, ...
『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천도교신문에서는 시인이자 숲 해설가인 이시백 동덕의 생활 명상 글과 라명재 송탄교구장이 엄선한 동학 경전 구절을 함께 엮어, 자연...
지난 11월 30일은 제가 전주교구에서 120주년 현도기념 특강을 한 날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대고천하 – 천지부모라는 제목이었습니다. 120년 전에 의암 손병희 선생이 ...
"함께 써온 100년의 역사, 다시 여는 100년의 미래" 포덕 166(2025)년 11월 23일 신인간사 대표 휘암 윤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