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5.04.18 15:03
TODAY : 포덕166년 2025.04.20 (일)
(지난 호에 이어)
이상한 일이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초막이 보이지 않았다. 경사진 언덕을 삼단으로 깎아 지은 초막 자리엔 갯바람에 흩어진 사구처럼 헐리고 쓸린 집터만이 추비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고향 집에서의 따뜻한 하룻밤을 생각했던 북접군은 폐허로 변해버린 터전 앞에서 망연자실 투레질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눈길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너럭바위 옆에서 오백 년을 견딘 느티나무였다. 고목은 거지꼴로 돌아온 북접군을 나무라듯 잎을 모두 지운 채 된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너럭바위 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온통 늑굴(勒掘) 당한 무덤처럼 처연한 형색뿐이었다.
때마침 중늙은이 하나가 짚북데기 비옷을 덮어쓰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가 동학군을 보자 오던 걸음을 되짚어 내려가며 말했다.
“이녁들이 떠나고 나서 왜놈이 쳐들어왔어. 여기뿐 아니라 왼 동네를 쑤시고 다니며 불을 싸질렀지. 내가 늘그막에 얻은 애 종자까지 태워 죽였단 말여. 이매망량 악다구니 같은 그놈들이. ”
예리성(曳履聲) 하나 없이 사라지는 노인을 보자 그도 이승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치를 떨었다. 북접군은 경풍(驚風) 맞은 아이처럼 비척거리며 노인이 앞서간 청산 읍내를 향해 뜬 발길을 옮겼다.
청산은 평야가 넓고 토질이 비옥해 예로부터 실속 있는 부자와 자작농이 많이 살던 동네였으나 동학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모두 종적을 감추었다. 북접군은 관원들마저 도망친 동헌과 인적이 사라진 빈집에 여장을 풀었다. 그러는 동안 관군과 민보군의 닦달에 이리저리 숨어 있던 농민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고 나와 동학군과 어울렸다. 스산한 귀향의 밤, 동학군과 농민은 윤똑똑이 말치레할 무용담도 없이 울음 반 눈물 반으로 화란의 세월을 탓하며 긴 밤을 함께 지새웠다.
하룻밤 사이에도 북접군을 토멸하려는 추격군의 동향이 시시각각 전해져왔다. 이번에 따라붙은 진압군은 용산 전투에서 패배한 지방군과 달리 경군과 일본군이었다. 무장과 전량이 빈약하고 입성도 남루한 북접군이 대적하기엔 벅찬 상대였다. 한시라도 빨리 익숙한 터전으로 자리를 옮겨 방비를 서둘러야 했다. 목적지는 대도소가 있는 보은 장내리. 거기에 가면 북접군이 기거하던 사백여 채의 초막과 대도소 건물이 남아 있을 것이며, 견고히 쌓은 돌담과 무엇보다도 동학군을 지지하는 지역민들이 반겨줄 것이었다. 대열을 둘로 나누어 1대는 원남을 경유하고, 2대는 보청천을 따라 관기 쪽으로 방향을 잡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틀 걸려 장내리에 도착한 북접군을 맞이한 건 처참하게 부서진 잔해뿐이었다. 대도소와 초막은 간데없이 사라졌고, 불에 탄 기둥과 부서진 서까래가 시린 눈밭에 나뒹굴고 있었다. 북접군은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 폐허가 된 터전을 둘러보았다. 깨진 장독대엔 말라비틀어진 메줏덩어리가 토사물처럼 뒤엉켜 있었고, 허물어진 돌담 사이로 들바람에 흩날리는 새앙쥐 털이 허옇게 썩어가고 있었다. 공주 전투를 위해 북접군이 자리를 뜬 직후 관군이 쳐들어와 대도소를 폐허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문바위골에 이어 장내리까지 쑥대밭이 된 걸 보자 북접군은 그만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사정이 이러니 수련이 깊지 않은 병졸 몇이 보은 읍내로 달려가 동헌과 관사(官司)를 닥치는 대로 부수고, 민가를 뒤져 식량이 될 만한 것이라면 소, 돼지는 물론 씨오쟁이에 든 강냉이까지 끌어냈다. 수뇌부가 말리고 각 포의 접주가 나서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우선 당장 오천 명에 가까운 대군이 숙영할 장소부터 찾아야 했다.
5. 횃불
북접군이 찾은 곳은 말티재를 멀리 끼고 돌아 만나는 북실마을이었다. 북실은 평지가 넓고 골이 깊어 대군이 주둔할 만한 최적의 장소였다. 추격군과의 거리도 멀어 하룻밤 유숙하기에 이만한 적지가 없었다. 마을 초입에 파수꾼을 배치하고 서둘러 숙영 준비에 들어갔다. 본진은 평지인 바깥북실에, 경기포는 야산을 안고 있는 안북실에 자리를 잡았다. 민가는 비어 있었으나 몇 집 되지 않았기에 마른 논바닥에 볏짚을 깔고 볏단과 장작을 날라 화톳불을 피워 늦은 잠자리를 마련했다.
저녁 끼니를 위해 하는 수 없이 읍내에서 끌고 온 소와 돼지를 잡았다.
밤이 되자 눈발이 짙어지기 시작하더니 해가 떨어지면서 이내 목화송이처럼 굵어졌다. 눈이 쌓인 진중(陣中)은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포근해 보였으나 버성긴 입성으로는 눈 호강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도 분분한 눈발 속에 불티가 날아오르자 너른 북실벌이 때아닌 정월대보름 쥐불놀이 한마당같이 정겹게 변했다.
북접군은 계속된 행군과 피로에 지쳐 식사가 끝나자마자 아무 데나 쓰러져 곯아떨어졌다. 젖은 거적때기를 덮은 위로 두꺼운 눈 이불이 쌓이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가면서 고추바람에 흔들리는 화톳불만이 춥고 헐벗은 이들을 시리게 얼비추고 있었다.
북접군은 너무 지쳐 있었다. 척왜양창의의 기치를 내건 혁명군이었지만 군기가 엄한 군대도 아니고, 군 전략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군기가 엄했다면 파괴된 장내리 대도소를 보고 광분하여 민폐를 끼치지 않았을 것이고, 냉철한 전략가가 있었다면 아무리 피곤해도 평지에 숙영지를 펴지 않았을 것이다. 광분한 탓에 보은 읍내에서 민폐를 저질러 밀고자가 생겨났고, 개활지에 지은 숙영지는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동태가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눈이 와서 야습이 없으리라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다. 초입에 파수꾼을 두기는 했어도 그들 역시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농민에 불과했다.
시간은 해시(亥時)를 넘어가고 있었다.
북실은 눈 속에 파묻혀 잠들었으나 이곳을 향해 접근해오는 한 무리의 군사가 있었다. 상주 유격장 김석중이 이끄는 민보군 240명과 후비보병 19대대 소속 일본군 37명이었다. 상주 민보군은 대부분 포수 출신으로 화승총을 휴대하고 있었고, 일본군은 스나이더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유격장 김석중은 병서를 많이 읽어 병법에 능한 유생으로 이번 야습도 그가 주장한 계책이었다. 그런 그들이 일본군 장교의 지휘하에 3개 조로 나누어 숫눈길을 헤치며 접근해온 것이었다. 이걸 알 리 없는 북접군은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 아침에 움직일 요량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추격군은 고양이 걸음으로 소리 없이 다가왔고, 흩날리는 눈발 속에 발자국마저 지워졌다. 추격군 척후병이 호리병 지나는 뱀처럼 움직여 모닥불을 쬐고 있던 최전방 파수병을 낚아채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추격군은 파수병을 심문해 북접군 배치 상황을 파악한 뒤 3개 방향에서 일제사격을 가하며 돌진해 들어왔다. 오천 명의 대군 속으로 삼백 명이 채 안 되는 돌격대가 기습을 시작한 것이다.
화톳불을 쬐고 있던 파수병이 장전할 틈도 없이, 논바닥에서 잠자던 사람이 일어나 눈 이불을 털 사이도 없이, 민가 안에서 잠들어 있던 사람이 문고리 당길 시간도 없이, 빗발치듯 날아드는 총알에 속수무책 쓰러졌다. 깨어 있던 이들도 혼비백산 도망치느라 넋이 나갔다.
민보군은 노루 사냥 나온 포수처럼 화승총을 쏘아댔고, 양총을 든 일본군은 도망치는 무리를 뒤쫓으며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저항하던 대열의 선두가 피를 쏟으며 나뒹굴자 뒤따르는 무리는 도망도 못 치고 오금이 접혀 주저앉았다. 화톳불 장작이 발길에 차이면서 쥐불 통이라도 던진 듯 온 벌판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추격군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북접군을 쏘아 쓰러뜨렸다. 눈밭에 꽂히며 사그라든 장작개비에서 피어오른 연기도 북접군의 발목을 잡았다. 매캐한 연기가 눈을 가리고 기침을 터뜨리게 해 추격군 귀에는 ‘나 여깄소’하는 과녁판 소리로 들렸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사냥이었다. 토끼몰이 섶사냥이었다.
바깥북실 들판은 한순간 살육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추격군은 벌통 앞에 도사려 앉은 말벌처럼 북접군을 도륙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논바닥에 흩뿌려진 더운 피가 눈을 녹이며 벼 밑동을 드러냈고, 떨어져 나간 팔다리는 흘린 장작개비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화톳불이 사그라들어 뿌연 눈밭으로 변한 벌판은 흑백 수묵화처럼 희고 검은 핏빛으로 벌바람에 흔들렸다. 눈발이 더욱 굵어져 쓰러진 주검을 하얗게 덮었다. 바깥북실에 숙영하던 북접군의 완벽한 패배였다.
그러나 안북실의 상황은 달랐다. 안북실 야산에 진을 치고 있던 경기포가 반격을 시작했다. 고지를 선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경기포가 안북실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가 반격을 개시한 것이다. 안북실의 주둔 사실을 몰랐던 추격군으로서는 의외의 복병을 만난 셈이었다.
경기포는 사거리를 좁혀 축차적으로 공격해왔다가 물러나며 사격을 이어갔고, 추격군은 정면과 좌, 우측 세 갈래로 나누어 반격을 시작했다.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밤새 이어졌다. 경기포는 무기에서는 열세였으나 숫자가 많고 고지를 선점하고 있어서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팽팽하던 균형이 깨진 건 시간이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탄환 때문이었다. 몇 정 되지도 않는 모젤 소총은 총알이 떨어져 무용지물이 되었고, 화승총은 사거리가 짧아 멀리 있는 적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반면, 추격군의 스나이더 소총은 먼 거리에서 날아와 사정없이 경기포를 두들겨댔다. 고지 위에 엎드려 있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총에 맞아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병사도 있었다. 경기포의 공격이 지지부진해지자 추격군은 공격 방향을 바꾸어 양쪽 능선으로 산개해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기가 없는 경기포는 철창과 환도, 맨주먹으로 맞서 싸웠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바깥북실에서의 살육전이 안북실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산은 시체로 뒤덮였고, 바윗돌에 쌓인 눈이 피에 젖어 녹아내렸다. 추격군의 참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뒷고개로 도망치는 북접군을 쫓아가며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바깥북실, 안북실, 하판리, 백현리 전체가 피의 강으로 흘러넘쳤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동학군을 말살하는 초멸의 대학살, 천살(擅殺)이었다.
이창진 수접주와 한규석이 이끄는 이천포의 한 무리가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절골을 넘어 학림리로 도망쳐 들어왔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이웃 동네 북실에서 벌어진 전투 소리에 놀라 황급히 몸을 피했지만, 촌장 김교무를 비롯해 남아 있던 이들이 도망쳐온 이천포군을 마을 뒤편 대밭에 숨겨주었다. 그러나 뒤따라 밀고 들어온 추격군이 북접군을 찾기 위해 지른 불로 마을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어버렸고, 흰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온 마을사람을 북접군으로 오인해 무차별 살상이 벌어졌다. 몇몇 젊은이들이 불붙은 장작개비와 쇠스랑을 치켜들고 대항해보았으나 총을 든 군인에겐 적수가 되지 못했다. 새도록 쏟아지는 눈발 속에 마을은 밤새 불탔고, 총성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한규석과 이창진은 대밭에 숨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한규석은 떨어져 나간 한쪽 팔목에서 울컥울컥 뿜어져 나오는 핏물이 새벽 한기로 얼어붙는 것을 내려다보면서 남은 한 손으로 이창진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마을은 화염에 불타 일렁이고 있었고, 이창진의 얼굴에서는 생의 마지막 그림자가 시취(屍臭)를 풍기며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총알이 뚫고 지나간 그의 한쪽 눈이 함몰되어 꾸덕꾸덕 마르면서 그 위로 눈이 내려와 하얗게 덮였다. 한규석은 감각이 사라진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부서져 나간 정강이뼈가 드러나면서 풍화된 규화목처럼 눈발에 시렸다.
한규석은 이창진을 감쌌던 손을 뽑아 속적삼 안에 넣어두었던 전투상보(戰鬪詳報)를 꺼냈다. 전투를 치를 때마다 꼼꼼히 적어왔던 귀 닳은 두루마리가 핏물에 젖어 있었다. 남은 한 손으로 두루마리를 펼쳤다. 검은 미명 속에 깨알같이 적어놓은 글귀들이 하얗게 떠올랐다. 이제는 더이상 쓸 수 없게 된 전쟁의 기록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지난 석 달간의 일들이 고스란히 적혀 있는 두루마리였다.
한규석은 탄환 없는 혁명의 끝을 반추해 보았다. 한울님의 나라도 떠올려 보았고, 다시 개벽한 후의 세상도 그려보았다.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것이 혁명이라고 말씀하신 해월의 음성도 되짚어 보았다. 그러나 생각의 형체가 잡히지 않았다. 형체는 없고 아련한 형상만이 날리는 눈발 속에 명멸했다. 눈 속 세상은 밝고 환했으나 대숲 속은 어둡고 추웠다. 후회는 없었다. 언제라도 한울님이 부르시면 믿음 하나만으로도 달려 나갈 것만 같았다.
몸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끊어진 팔목과 다리를 통해 체온이 빠져나가는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닫히는 육혈(六穴)을 통해 치받아 들어오는 열기가 몸을 후끈 데웠다. 횃불의 종심에 닿은 것처럼 온몸이 뜨거워졌다. 불의 떨림이 미처 이루지 못한 혁명의 형상으로 흔들렸다. 횃불 속의 하얀 혁명이었다.
횃불은 민가의 지붕이 타는 불꽃 배경 속에서 자라고, 흔들리고, 커지고 있었다. 그 사이로 대숲에 고여 있던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대숲을 휘젓고, 횃불을 휘젓고, 전답을 휘젓고, 송림을 휘저으며 퍼져나갔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어도, 먼 곳에서, 솔가지에 둥지를 튼 백학들이 시리고 지친 다리를 바꿔 딛기 위해 푸드덕 날아올랐다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여명의 붉은 기운이 학림의 대숲에 번지기 시작했다.
먼동이 트는 소리였다.
끝.
(연재를 마칩니다.)
작가소개
김현종 - 충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해방기의 북한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간문예지 《한국문학시대》 소설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천살의 시대』, 소설집 『보다 보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