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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사자암- 해월 신사께서 최초로 발을 디딘 호남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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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사자암- 해월 신사께서 최초로 발을 디딘 호남 지역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산127

  • 편집부
  • 등록 2026.03.13 00:14
  • 조회수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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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 2026-03-13 002540.jpg
사자암으로 오르는 계단
화면 캡처 2026-03-13 002555.jpg
사자암 입구- 이곳부터 급경사가 시작된다.

 

익산 사자암은 미륵산(일명 금마산) 8부 능선에 자리한 암자이다. 이 암자는 김제 모악산 금산사의 말사(末寺)였는데, 지금은 ‘사자사(獅子寺)’라고 이름하며, 암자를 벗어나 독립된 사찰로 되어 있다. 

신용리 입구에서 마을의 어귀를 지나 산길을 따라 오르면 가파른 계곡 길을 만난다. 다시 이 지역 특유의 푸르른 대나무와 소나무 숲을 지나 기이한 바위들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는 골을 따라 들어가면, 골짜기 막다른 곳에서 미륵산 가슴에 안기듯 자리하고 있는 사자암을 마주친다. 지금은 대나무와 소나무 숲을 이룬 곳까지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게 길이 닦였고, 이곳에서부터 돌계단이 놓여 있다. 또 돌계단 옆에는 리프트가 설치되어 무거운 짐이 있거나 연세 높은 분일 경우 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다.

사자암이 들어앉은 골짜기의 막바지는 입구를 제외하면 삼면이 대부분 바위벽으로 둘려 있어, 마치 큰 바위산을 깎아내고 그 안에 암자를 들어앉은 듯한 느낌을 준다. 

사자암에서 금마저수지를 바라보면 꼭 한반도 모양 같다. 멀리 전주의 주산인 모악산도 바라다보이고, 왕궁리 유적도 가깝게 보인다. ‘사자동천(獅子洞天, 이종림 作)’이란 각자바위는 이곳이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 이상향임을 나타낸다. 늙은 큰 느티나무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탁 트인 앞을 조망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명당이고 명산이다. 사자암에서 미륵산 정상을 오르다 보면 삼한 시대의 석축산성인 미륵산성도 있다. 미륵산 정상의 능선 바위 조망 포인트에서는 호남평야의 넓은 들판은 물론 서해까지 눈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시원스러운 천혜의 경관이 펼쳐진다. 마치 “거시기 그저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서 살아보는 것이랑께.”라며 사자후를 토하는 듯하다.

사자암이 들어앉은 골짜기 바로 뒤는 미륵산의 두 봉우리 중 하나인 장군봉의 정상이다. 정상은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기이한 바윗덩어리로 이루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자암을 품고 있는 골짜기는 능선과 능선이 이어져 연봉(連峰)을 이루고, 그 뒤쪽으로는 드넓은 호남평야가 시야에 가득하게 들어와 장관을 이룬다. 마치 산과 산이 연봉을 이루며 달리고 달려와 마침내 이 미륵산에 이르러 멈춘 듯한, 그래서 미륵산은 수많은 연봉을 거느리고 드넓은 평야 앞에 우뚝 서 있는 장군의 형상을 하고 있다.

화면 캡처 2026-03-13 002626.jpg
사자암의 옛모습(위)과 현재 모습(아래)

화면 캡처 2026-03-13 002639.jpg

이곳 익산 미륵산 사자암은 해월 신사께서 갑신년(甲申年, 1884) 6월 지목의 혐의를 피해 4개월간 머물던 곳이다. 『천도교서』나 『천도교회사 초고』, 『천도교월보』 등 동학 천도교 관련 기록들을 살펴보면, 다름과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1884년 6월에 神師ㅣ 指目의 嫌으로 益山郡 獅子庵에 隱居하실새 朴致京의 周旋으로 四朔 동안을 經過하다가 朴致京이 尙州 前城村에 家居三間을 買得하야 神師宅을 移接케 하다.

1884년 8월 신사께서 지목의 혐의로 인하여 익산군 사자암에 은거하실 때 박치경의 주선으로 넉 달 동안을 지내시다가, 박치경이 상주 전성촌에 삼간 오옥을 사들여 신사 댁을 이사하게 했다. 

- 『천도교회사 초고』

해월 신사께서 익산 사자암에 들어온 것은 대신사께서 신유년(1861)에 남원 은적암에 몸을 의탁하여 머문 이후, 동학의 중요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호남지방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이 다음의 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포덕 2년 신유에 수운 선생께압셔 남원 전주로부터 순가(巡駕)하사 포덕을 위시(爲始)하실 때에의 서광이 본군에 조입하다. 포덕 25년 갑신 춘에 해월 선생께압셔 본군 박치경을 솔하시고 미륵산 사자암에 왕하사 연성기도 후로 교운(敎運)이 차차대진하였다.

- 『천도교회월보』 189호

 

다시 말해서 해월 신사는 경상도 일원과 강원도 산간으로 몸을 피해 내내 숨어 지내시다가 갑신년(1884)에 비로소 호남 지역인 이곳 익산 사자암을 중심으로 포덕의 기반을 넓힌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해월 신사께서 익산에 오게 된 것은 단양 장정리에서 10년간 지내시면서 장정리를 중심으로 교단을 정비하고, 경전 등을 발간하여 연원의 정통성을 더욱 공고히 한 이후의 일이 된다. 즉 익산 사자암은 동학의 교세가 경상도와 강원도, 강원도 접경의 충청도 일원에서 전라도까지더욱 확대되는 중요한 거점 지역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사자사가 있는 미륵산의 바로 앞에는 현재 미륵사 중건이 한창이다. 본래 미륵사 터로 유명했던 곳이고, 백제 때의 대사찰인 미륵사가 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 뒷산 역시 이름이 미륵산이 된 것이다. 

미륵사 창건 설화는 백제 무왕(武王)과 관계되어 있다. 미륵사는 백제 무왕(武王)이 마(薯)를 캐며 지내던 자신의 비천한 시절을 이겨냈고, 이내 한 나라의 임금으로 등극하게 되었다는 ‘서동(薯童)의 설화’와 함께 그 유서가 깊은 곳이다. 

갑신년(1884년)에 해월 신사께서 익산 사자암에서 머문 이후, 동학의 교단은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한다. 교세를 삼남(三南) 일대로 넓혔고, 나아가 새로 입도한 젊은 인재들을 도(道)의 운용에 많이 기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렇듯 매우 중요한 자리인 사자암에는 아쉽게도 동학 관련 표지판이 하나도 없다. 해월 신사께서 넉 달이나 머물렀고, 호남 포덕의 발판이 되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호남에서 발발한 동학혁명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표지판 하나쯤은 서 있어 후학들이 역사를 공부하고 유적지를 답사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화면 캡처 2026-03-13 002655.jpg
‘사자동천(獅子洞天)’ 글씨가 새겨진 바위

 

 

수암 염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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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충북 진천 출생

한국종교인연대(URI-K) 공동상임대표

3·1운동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수운최제우대신사출세2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천도교서울교구 후원회장

천도교중앙총부 종의원 의장, 감사원장대행 역임

(사)한국사회평화협의회 감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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