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포덕166년 2026.04.02 (목)
최진립 장군 묘소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글을 남겼다. “우리 선조 험천 땅에 공덕비를 높이 세워 만고유전 하여보세. 송백 같은 이내 절개 금석으로 세울 줄을 세상 사람 뉘가 알꼬.”, “선조의 충의와 절개는 용산에 남아 있네. 해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의 우리 임금님 성덕을 다시 돌아보네.”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언급한 ‘선조’는 잠와 최진립 장군으로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7대조이다. ‘용산’은 경주 내남면 이조리에 있는 용산서원을 말한다. 유림에서는 최진립 장...
내포 동학, 하나의 세력으로 내포 지역의 동학은 1880년대 초에 전파되고 1880년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1894년 5월 홍주 목사 이승우李勝宇가 부임하면서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이승우는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동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하였고 관군을 동원하여 체포와 처형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내포의 동학군들은 하나의 세력으로 거대화하려는 자구적인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이는 지역적으로 포별 각개활동을 하기가 더 이상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전국적으로는...
경부고속도로 대전I·C에서 옥천 방향으로 난 첫 터널을 빠져나가면 오른편으로 증약리가, 왼편으로 청남대가 있는 문의까지 펼쳐진 대청호수가 보인다. 이곳에 이르면 하늘과 물, 산이 뿜어내는 푸르름에 감탄하게 된다. 그런데 경부선 철도 세천역 부근이기도 한 이곳이 1894년 동학혁명 당시 격전지였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조선 시대에 한양에서 동래까지 가려면 현재 경부고속도로 대전터널이 놓인 마달령(馬達嶺)이라는...
01. 동학군 점령지, 금구관아 터 소재지) 전북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 177-16 동학혁명 당시 동학군이 점령하였던 곳이다. 금구관아 터에는 현재 금구면사무소와 금구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금구면은 조선시대에는 금구현으로 독립된 행정구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김제군에 병합되었고, 이후 김제시가 김제군과 잠시 분리되었으나, 1995년 다시 김제시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구는 동학혁명 당시의 주요 지도자 가운데 김덕명과 김인배를...
지금 나라 안팎의 분위기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와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로 어수선하다. 먼저 오염수 방류는 IAEA에서도 확실한 입장이 나오지 않았고, 만약에 안전하다 쳐도, 오염수의 방류가 득이 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안전을 100% 보장할 수 없다면, 문제는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일본 국민조차도 반대하지 않는가. 정부가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방조한다면, 우리의 안전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더는 오염수 방류로 인해 국민을 화나게 만들지 말고, ...
개벽의 순간 세상이 온통 어둡다. 낮에 보았던 아름다운 꽃들도 자취를 감췄다. 반짝이던 밤하늘의 별들도 어디로 숨었다. 이렇게 정읍의 밤거리는 내 마음처럼 어둠을 서성거린다. 순간, 사람들의 입에 탄성이 쏟아진다. 모두다 밤하늘을 가리켰다. 어둠을 가르며, 신비로운 달빛이 대지를 밝혔다. 누가 말했다. 영화에서 보았던 천지창조의 모습이다. 그렇다. 이렇게 개벽의 순간은 사람의 눈에서, 입에서 퍼져나간다. 바로 순간 순간이 새로운 개벽이요, 창조이다. 개벽은 자신에게 있다. 사진, 글_ 이윤영
구룡 마을 뒤편 운치 있고 호젓한 대나무 숲길을 따라 사자암에 오른다. 사자암은 미륵산(430m) 장군봉의 동남쪽 해발 320m의 8부 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다. 미륵산을 풍수적으로 사자의 기氣가 충만한 사자앙천 獅子仰天이라 했다. 미륵산은 청와대 뒷산 북악산과 모양이나 산세 그리고 산의 높이까지도 비슷하다. 미륵사지에서 미륵산을 올려다보면 정말 북악산과 똑같이 생겼으며 사자사 위치 역시 북악산 동남쪽 8부 능선의 바위 2개가 있는 곳과 위치가 비슷함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있다. 사자암은 김제 모악산 금산사의 말사로 2...
1884년 10월 4일 해월 최시형 신사는 미래의 동학 인재 손병희, 박인호, 송보여와 공주의 가섭암(迦葉菴)으로 수도를 떠났다. 가섭암은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 있는 마곡사의 말사다. 마곡사에서 북서쪽으로 약 4㎞ 거리에 국사봉 자락의 해발 400m 지점에 있다. 손병희의 사람됨을 파악하고자 '솥을 잘못 걸었다고 계속 수정하게 해 일곱 번에 걸쳐서 행하게 했다', '밥을 잘못 지었다고 일곱 번을 짓게 했다'등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얘기가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반복해서 일을 시켜도 불평하지 않고 지시를 따르는 됨됨이와 인내심...
조재벽(趙在壁)은 자신의 포중인 청산군 문바위골(文巖里) 김성원(金聖元)의 집으로 해월선생을 이주시켰다. 덕기의 병세는 악화되어 10월 15일에 19세의 나이로 운명하고 말았다. 김씨 사모님의 소생은 딸 최윤(崔潤)만 남았다. 최윤은 동학혁명운동 당시 체포되었다가 청산현 아전 정주현(鄭周鉉)과 결혼하여 훗날 아동음악가로 활동한 정순철(鄭順哲)을 낳았다. 1894년(갑오) 1월(음력) 새해에 접어들면서 신사가 문암리에 강석(講席)을 마련하여 강도회를 베풀었다. 신앙심을 기르고 동학이 지향할 방향을 잡아 주기 위해 교육활동...
이곳은 해월선생이 청년시절을 지낸 곳이다. 해월선생은 35세 되던 1861년 6월에 경주 용담으로 찾아가 대신사로부터 도(道)를 받아 동학에 입도했다. 이날부터 스승님이 가르쳐 준 대로 자나 깨나 입에서 주문 소리를 떼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에 두세 번씩 용담으로 찾아가 직접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늦가을 어느 날 용담에 갔을 때의 일이다. 여러 도인들이 도담을 하다가 모두 천어(天語)를 들었다며 자랑을 했다. 신사는 “나만 게을러 천어를 못들었다”고 여겨지자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 밤중에...
『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천도교신문에서는 시인이자 숲 해설가인 이시백 동덕의 생활 명상 글과 라명재 송탄교구장이 엄선한 동학 경전 구절을 함께 엮어, 자연...
『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천도교신문에서는 시인이자 숲 해설가인 이시백 동덕의 생활 명상 글과 라명재 송탄교구장이 엄선한 동학 경전 구절을 함께 엮어, ...
한 청년이 찾아왔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루 24시간을 온갖 망상에 시달린다고 했다. 옆집 누나를 강간해서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고소당했다고 한다.(어이구야 갈수...
『홀로 피어 꽃이 되는 사람』 천도교신문에서는 시인이자 숲 해설가인 이시백 동덕의 생활 명상 글과 라명재 송탄교구장이 엄선한 동학 경전 구절을 함께 엮어,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