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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채봉 부산동학기념사업회 대표, “영해가 동학혁명의 출발점”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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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채봉 부산동학기념사업회 대표, “영해가 동학혁명의 출발점” 강조

1871 영해동학혁명, ‘사람이 하늘이다’의 첫 울림논산동학한마당 초청강연에서

  • 노은정
  • 등록 2025.10.16 18:26
  • 조회수 1,481
  • 댓글수 0

[은정]초청 강연 자료집-1871 영해동학혁명의 의미(1)_page1.jpg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는 지난 10월 11일 오후 3시, 김홍신문학관에서 허채봉 부산동학기념사업회 대표를 초청해 「1871 영해동학혁명의 의미」를 주제로 초청 강연을 열었다. 이번 강연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수운 최제우 대신사의 시천주 사상을 중심으로, 1871년 영해에서 일어난 첫 동학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그 현대적 의미를 짚는 자리였다.

 

허채봉 대표는 “1871년 신미년 영해동학혁명은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보다 23년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동학혁명”이라며 “영덕군 영해부에서 일어난 이 의거야말로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내천 사상이 현실로 드러난 최초의 시민혁명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수운 대신사가 1860년 무극대도를 깨닫고 포덕을 시작한 뒤, 1863년 16명의 접주를 임명하며 전국에 교단을 세웠다”며 “그중 영해는 해월 최시형 신사가 직접 파견될 만큼 동학 교세의 핵심 지역이었다”고 설명했다.

 

신향과 구향의 갈등 속에서 피어난 평등의 사상

허채봉 대표는 영해 지역의 역사적 배경도 주목했다. 조선 후기 영해는 신향과 구향의 갈등이 첨예했던 곳으로, 서얼 중심의 신향 세력이 반상 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동학을 적극 수용했다. 그는 “1840년 영해향전을 계기로 서얼 차별을 폐지하려는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고, 이들이 인내천 사상에 깊이 공명했다”며 “이러한 지역의 사회구조가 1871년 동학혁명으로 이어지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해월 신사는 수운의 순도 이후 12년간 은둔의 세월을 보내며 신앙 공동체를 지켜냈고, 박하선·박사헌 부자와 영덕·영양의 동학인들이 교단을 굳건히 지탱했다. 허채봉 대표는 “그들의 신앙적 결속과 평등을 향한 열정이 결국 영해에서 폭발했다”고 말했다.

 

1871년 3월 10일, 수운 대신사의 순도일에 맞춰 전국 각지에서 600여 명의 동학교도들이 영해 병풍바위 아래에 집결했다. 이필제, 해월 최시형, 강사원, 박사헌 등 지도부는 천제를 올리고 “탐관오리를 징벌하고 백성을 구하자”는 격문을 낭독했다. 봉기군은 영해부 관아를 장악하고 부사 이정을 처단했으나, 정부 토벌군의 반격으로 닷새 만에 해산됐다.

 

이 의거로 96명이 효수되거나 물고(몰살형)에 처해졌고, 수백 명이 유배되었다. 그러나 허채봉 대표는 “그들은 약탈이 아닌 의로움을 실천했다”며 “민가에서 음식과 물자를 빼앗지 않고 값을 치른 기록은, 그들의 의거가 단순한 폭동이 아닌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신념의 실천이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필제의 난’ 아닌 ‘영해동학혁명’으로 바로 세워야

허채봉 대표는 “그동안 이 사건이 ‘이필제의 난’ 혹은 ‘영해작변’으로 불리며 폄하되어 왔다”며 “이제는 ‘1871 영해동학혁명’으로 역사적 위상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의 문초기록인 『교남공적』과 군 작전일지 『영해부적변문축』은 이 사건이 단순한 소요가 아니라 조직적인 동학혁명임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또한 “1871 영해동학혁명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1919년 3.1혁명으로 이어지는 ‘동학민주주의’의 시발점”이라며, “시천주·사인여천·삼경의 정신이 오늘날 인권·평등·평화의 가치로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말했다.

 

강연을 마치며 허채봉 대표는 “영해동학혁명은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을 향한 첫 발걸음이었다”며 “오늘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바로 그 불씨 위에 서 있다”고 맺었다. 이번 강연은 논산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가 주관하고 논산시가 후원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동학 관련 연구자와 천도교인들이 참석해 ‘1871 영해’의 뜻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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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영해동학혁명의 의미’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마치고 참석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허채봉 동학농민혁명부산기념사업회 대표가 발표를 맡아 영해봉기의 역사적 전개와 사상적 의의를 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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