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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 나용환 선생 89주기 …천도교의 큰 뜻으로 3·1혁명에 앞장선 민족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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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 나용환 선생 89주기 …천도교의 큰 뜻으로 3·1혁명에 앞장선 민족대표

  • 노은정
  • 등록 2025.08.19 15:21
  • 조회수 13,105
  • 댓글수 0
[크기변환]나용환.jpg
천도교인이자 3·1혁명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인 봉암 나용환(1864~1936) 선생

 


오늘, 8월 19일은 천도교인이자 3·1혁명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인 봉암(逢菴) 나용환(羅龍煥, 1864~1936) 선생의 서거 89주기다. 선생은 평안남도 성천에서 태어나 일찍이 동학에 입교해 교단의 지도적 위치에 올랐으며,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중심인물로 기억된다.


나용환 선생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평안도 지역에서 활동하며 일찍이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 1900년 수접주, 1902년 대접주, 1903년 의창대령을 맡으며 수천 명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고, ‘포덕대왕(布德大王)’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1906년 의암 손병희 성사로부터 ‘봉암’이라는 도호를 받으며 천도교 지도자로 자리매김하였고, 1907년 은장을 수훈하며 정주순독과 도령, 신도사 등 요직을 맡았다. 이후 천도교중앙총부 현기사장, 공선관장, 도사에 이르기까지 교단의 핵심 간부로 활동하였다.

 

1919년 2월 25일, 고종 장례식에 맞춰 상경한 그는 천도교중앙총부에서 의암성사와 권동진, 오세창 등 지도자들과 회합하였다. 그 자리에서 독립선언 계획을 듣고 흔쾌히 민족대표로 참여를 결의하였다. 같은 달 27일에는 김상규의 집에서 독립선언서 초안을 검토하고 서명했으며, 3월 1일 오후 인사동 태화관에 모여 민족대표로서 만세삼창을 외쳤다. 곧바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21년 출옥 후에도 천도교의 도사이자 종무사, 종리사, 강도사로 활동하며 교단 운영과 신앙 지도에 힘을 쏟았다. 1925년에는 교단이 신·구 양파로 갈라졌을 때 신파에 참여하여 종법사에 선출되었고, 이후 종법사장, 최고고문, 법정 등 원로직을 두루 맡으며 교단을 이끌었다. 선생은 1936년 8월 19일, 서울 소격정 자택에서 향년 72세로 생을 마쳤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한편, 망우역사문화공원 자문위원이자 해설사를 맡고 있는 정종배 시인은 나용환 선생 서거 89주기를 맞아 자신의 블로그에 ‘영영 못 돌아올지 모른다 새옷 입고 집 나선 천도교인 3.1혁명 민족대표 33인 봉암(逢菴) 나용환(羅龍煥, 1864~1936. 8. 19) 89주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아래는 나용환 선생 89주기를 맞는 관련 글이 실린 정종배 시인의 블로그 주소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jjb3467&logNo=223975383973&navType=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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