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5.04.25 10:49
TODAY : 포덕166년 2025.04.27 (일)
일용행사(日用行事)가 도 아닌 게 없다.
해월 최시형 선생이 온몸으로 실천하고 보여준 이 말을 난 좋아한다. 도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삶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교훈가>에서 말씀하신, ‘이같이 쉬운 도를 자포자기한단 말인가’ 이 말씀 또한 내가 좋아한다. 교훈가는 선생이 자녀와 조카들한테 한 말씀이다.
천도교에 몸담은 지 겨우 한 해 반이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나름 도가 텄다고 말하는 분야가 있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 말이다.
입교식 뒤에 연원회 모임에서, 손수 만든 빵을 가져와서 사람들과 나눠 먹은 것은, 아마 내가 처음일 것이다. 누룩막걸리를 넣고 띄운 토종 앉은키 밀가루에 국산 잣까지 넣고 만든 빵이다. 전교인인 명암 정윤택 선생이 잠시 흐뭇한 얼굴을 보였다.
나처럼 먹는 걸 좋아하고 음식 만드는 걸 즐기는 사람은 음식값이 아무리 올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값싼 식재료로 훌륭한 음식을 얼마든지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까닭이다.
이를테면, 오늘 나의 점심은 10곡 식빵 봄동 샌드위치와 우유, 요거트였다. 요즘 끝물인 봄동은 된장국, 쌈, 샌드위치 등에 써먹을 수 있는 좋아하는 식재료. 추위를 이겨낸 노지 배추로서, 속알은 없을지언정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진한 냄새와 맛이 담겼다.
나는 한살림에서 조합원 활동을 하면서 음식 만들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몇 해 앞서 낡은 오븐 하나를 중고가게에서 4만5천 원에 사면서 크게 폭이 넓어졌다.
지금 우리집 아랫목에는 뚝배기 하나가 놓여있다. 토종 앉은키 밀가루에 누룩막걸리를 넣고 치댄 반죽을 이틀째 띄우고 있는 것이다. 오늘 집에 돌아가면 구운 삼치에 밀가루 반죽을 얹어 삼치빵을 만들 것이다.
내가 빵을 만든 것은 네댓 해밖에 되지 않았다. 아는 사람을 통해 빵 만드는 곳을 소개받았다. 그런데 그곳이 너무 멀었고, 수업료가 10만 원이었다. 무엇보다 이 아는 사람이 빵 반죽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유튜브를 보면서 빵 만들기를 그냥 시작했다.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그냥 만들어 먹을 만하다. 이렇게 쉬운 도(?)를 자포자기한단 말인가?
생협에서 나온 질 좋은 두유를 띄워서 두유 요구르트를 만든 것은 누구한테 배운 것이 아니다. 스스로 고안하고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귀한 제품이 나오기도 한다. 수운 최제우 선생처럼 생이지지(生而知之)인 것이다. 타고났다는 얘기인데, 먹는 쪽에서 그렇다.
이 두유 요구르트는 중증장애가 있는 우리 아들한테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열량도 낮고 영양도 풍부해 저녁밥으로 먹이고 있다. 내가 날마다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소중한 일은, 아침마다 두유 요거트를 만드는 것이다. 두유 한 병에 요거트만 조금 붓고 따듯하게 해주면 된다.
난 아이들한테도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평소 생각해왔다. 천도교 여러 교구에서도 음식을 만들어서 서로 나눠 먹는다면, 동덕의 정이 더욱 깊어지고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작은 교구에선 오븐 하나씩을 사라고 권하고 싶다.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은 훌륭한 교육이요, 포덕이라고 여긴다.
천도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해월 최시형 선생이 한 말씀을 경전에서 읽고 쾌재를 불렀다. 음식을 먹을 때 한울님께 고하는 식고(食告)야말로 도를 얻는 지름길이라고 한 말씀이다. 이렇게 쉬운 도를 자포자기한단 말인가! 기세등등했지만, 식고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눈앞에 맛있는 것이 보이면 머릿속에서 식고가 싹 사라져버리고, 바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간다. 아,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원초의 욕망인가! 그 뒤로 지금까지 내가 식고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여기진 않는다. 다만 열심히 하려고 애를 쓰고 있을 뿐이다.
천도교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주문 수련을 하면서도 느낀 점이 있었다. 살아가면서 내가 얼마나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순간순간 힘들다, 두렵다, 짜증스럽다, 걱정스럽다 하는 나쁜 생각들이 내 마음을 옥죄고 있다. 그럴 때 ‘한울님을 내 안에 모셨습니다’ 하고 다짐하고, 21자 주문을 외우는 것은 큰 힘을 주고 있다.
어제는 <신과 인간>이란 영화를 보았다. 반군이 들끓는 혼란한 무슬림 국가인 알제리 시골 마을에서 가톨릭 수도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일곱 사람의 수도사, 한 사람의 의사는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돕고 가톨릭의 여러 수행 방법을 함께 한다. 그렇게 평생 온몸을 던져 살아왔지만, 늙어가기만 할 뿐이다. 왜일까? 형식에 지나지 않는 수행 방법만 있을 뿐, 천도교처럼 주문 수행이 없는 까닭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내가 천도교에 입교한 뒤 가장 놀라웠던 점은, 경전 내용과 주문 수행 등 내가 봐도 수긍할만한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일용행사가 도 아닌 게 없다.’ 이렇게 쉬운 도를 자포자기한다는 말인가!
글, 이상우(서울교구)
신설된 코너 일용행사가 도(道) 에서는 교인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단상과 깨달음의 글,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 교리 탐구 등을 주제로 이어집니다. 원고주제, 분량, 형식은 자유입니다. 교인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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