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5.04.11 16:18
TODAY : 포덕166년 2025.04.14 (월)
지난 3월 20일 제4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천도교 교령으로 당선되셨습니다. 천도교는 무입후보 비밀투표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교령을 선출하고 있습니다. 교단의 수장으로 당선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당선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대의원들이 입후보자 없이 이름을 써냄으로서 교령을 뽑는 이 선거 방법은 추대제의 일종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후보자가 공공연하게 알려지게 되고, 선거운동도 장기간에 걸쳐 하게 됨으로써 선거가 과열되는 폐단을 남기는 이 선거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좋은 제도임에도 그 장점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으니, 좋은 제도라고는 할 수가 없겠지요. 그래서 이제는 보다 종교적이고 완전한 교령 선출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뽑아주신 대의원들께 감사드리며, 대의원들의 뜻을 받들어 교단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역할을 다할 각오입니다. 어깨가 무겁습니다. 함께 경쟁했던 다른 분들께도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3대의 계대교인으로서 오랫동안 천도교를 신앙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신앙을 이어오셨는지 서 간략하게 소개해 주십시오.
저의 증조부께서는 동학혁명 때 혁명에 참전하기 위해서 남해 동학농민혁명군과 함께 노량나루를 건너 뭍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때는 고창전투, 섬진강 전투, 하동 고성산 전투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던 때였지요. 그러나 그 어느 전투에 참전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증조부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노량나루를 건너가신 날이 10월 23일이었고, 그날을 기일로 삼아 지금껏 제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로 볼 때 저희 집은 동학혁명 이전에 천도교에 입교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3대를 이어 천도교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부터 교당에 나가게 되었지만, 이런 증조부의 사연은 이후 저를 견고한 천도교인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대를 잇는 천도교 신앙은 어릴 적부터 교구에서 많은 활동을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동안 천도교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활동을 해오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저는 고향 남해에서 유소년 때부터 중고등학교 때까지 천도교 활동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를 만들어 학생신문 발행, 백일장, 사생대회, 웅변, 연극 등 학예활동을 열심히 하였으며, 청년기에는 진주시교구에서 대학생 지도활동 등을 펼쳤으며, 동천고등학교에 봉직하면서는 동천교구 창설 등에 역할을 다했습니다. 동천교구에서 경리, 교화부장을 거쳐 교구장을 직을 퇴임 직전까지 맡아 맡은 바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안관성 종법사가 천도교 이념으로 설립한 부산 동천고등학교에서 오랜동안 교직생활을 하셨습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천도교와 관련해서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교직생활을 하면서 천도교와 관련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동천고등학교 종학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하여 천도교 교육자회 주관으로 서울의 백인영 교장 선생님과 공동으로 천도교 교과서를 만들고, 중앙총부의 지원으로 학생들에게 천도교 교과서를 보급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또 지방교구로서 시일보를 처음으로 만들고, 학교 교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족 합동시일을 창안했으며, 시일날 성화실이 꽉 찰 정도로 가족 교인들이 모여 밥을 나눠 먹으며 어린이들의 재롱잔치를 즐겼던 일이 떠오릅니다.
또 교사와 가족이 함께 야외시일을 갔던 일이며, 방학이 시작되면 어김없이 수도원을 찾아 길게는 한 주간씩 수련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외에도 천도교 명사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고, 천도교 부산시 연합 체육대회를 개최했던 기억이 납니다. 참으로 천도교 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중앙총부와 재단으로부터 공로패를 여러 차례 받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천도교는 한국근대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바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천도교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천도교가 한국 근대사회 끼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동학, 천도교를 빼면 한국근대사가 성립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때 천도교가 하려고 했던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한 마디로 간추리면 그건, 포덕천하하여 보국안민하고 광제창생하므로써 이 세상을 천국 세상으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대단히 종교적 이상이 담긴 슬로건이었지요. 지금 이 시대 한국 사회에서 천도교가 할 일 또한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패권주의, 신사대주의에 대응하여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평화적인 시대정신을 현창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열어가는 신앙적 실천에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또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하고 동서화합을 위한 종교적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에 의한 지구 환경의 파괴를 극복하고 자연재해를 줄임으로써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새생명 살리기 운동 같은 것을 펼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천도교 교령의 임기는 3년입니다. 앞으로 교령님께서 중점적으로 추진할 일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다할 수 없지요. 무엇보다도 그동안의 소모적 갈등과 대립을 동귀일체 정신으로 해소해야만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천도교 조직의 뿌리를 살리는 일이 시급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지방교구를 살려나가는 일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봉사와 헌신하는 전문 교역자 양성이 필요합니다. 교단내 교육 기관을 십분 활용할 생각입니다. 신앙체는 본래 성금으로 운영하는 것이고 보면 성금 활동을 활성화하여 포덕사업을 전개하고, 그 포덕사업을 통하여 성금 활동을 극대화해 나가는 선순환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내세운 공약을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과욕을 부리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천도교의 대중화 또는 교세 확장을 위해 교단에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천도교의 교세가 많이 약화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습니다만, 대표적인 것 하나만 든다면, 참 아이러니하게도 지나치게 민족적이고 이념적인 경향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천도교 정신은 북쪽에도 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북쪽은 이 정신을 이념적으로 이용하려 했지요. 하지만 북한 천도교인들은 그들의 정치적 체제가 천도교 정신에 부합하지 않음을 깨닫고 궁을기를 앞세우고 반공을 외치면서 월남하는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로 인하여 북한 천도교인들이 압박을 받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반대로 남한 사회에서는 서구 세력이 급격히 확장되면서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두 분 교령이 월북하는 바람에 세간으로부터 이념집단으로 오해받아 극도로 교세가 위축되기 시작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념적 대립에 민감한 사회에서 지도자들의 신앙적 선택이 포덕활동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하여 그 후 오랜 동안 침체기에 잠겨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곤경한 일을 겪었으니, 이제는 우리 천도교인은 이념이 아니라 신념으로 다시개벽하는 참 신앙인, 스승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참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포덕이 될 것이고, 이것이 교세확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령 당선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끝으로 교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천도교를 올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행할 것이 아니라, 스승님의 말씀에 따라 신앙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한울님을 모신 귀한 존재로 공경하는 대인접물 정신을 실천하고, 덕을 베푸는 삶으로 자신의 삶을 다시개벽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