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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기행-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동학·천도교 제1성지 용담정 순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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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동학기행-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동학·천도교 제1성지 용담정 순례(2)

(지난 호에 이어)

 

2. 용담정, 그리고 와룡암과 용담서사

용담정은 동학·천도교 제1성지라 일컫는 곳이기에 용담정의 유래에 대해 교중 기록과 표영삼, 한태원 선생의 기록을 중심으로 연혁을 살펴보겠다.

 

근암문집(수운 대신사 부친 최옥)에 의하면, 구미산은 경주의 높은 산으로서 큰 바위가 솟아있는 것이  마치 거북이와 용이 서려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근암공은 ‘구미산은 경치가 매우 좋아 일찍이 26경을 읊은 바 있는데, 구미산 밑에 있는 와룡담臥龍潭은 그중의 빼어난 모습중의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1778년 복령이란 승려가 와룡담臥龍潭 북쪽에 암자를 짓고 원적암圓寂庵이라 하였다. 그 후 스님들이 흩어져 암자가 폐지되었으므로 처사공處士公 종하宗夏(수운 대신사 조부)가 그 집과 전답 수백평을 사들여 이곳에서 자제분 근암공으로 하여금 학업을 닦게 하였다. 원적암은 근암공의 스승이신 기와畸窩 이상원李象遠 선생이 정자의 이름을 와룡암臥龍庵이라 새롭게 지었다.


그 후 30여년을 지난 후 집이 쇠퇴하여 허물어져, 근암공이 그 자리(와룡암)에 다섯 칸의 집을 새로 짓고, 또한 북쪽에 네 칸을 지어 용담서사龍潭書社라고 이름 하였다. 수운 대신사께서 득도 이전에 이사 왔을 당시 와룡암터 집은 허물어져 방치되었던 것을 가족과 생활하는 집으로 수리하여 기거하였다.

그런데 현재 용담정이라 부르는 건물 이름이 수운 대신사 당시 부른 이름인지 훗날 제자들에 의해 불렀는지 정확하지 않다. 용담정이란 이름의 유래를 추적해보면 다음과 같은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용담정龍潭亭이란 건물 이름은 수운 대신사께서 지은 교훈가 ‘···구미용담龜尾龍潭 일정각一亭閣에···’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의 용담정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운 대신사는 득도 원년(1860, 경신) 4월 5일 11시경 와룡암터 또는 용담서사터 집에서 득도하였다. 그런데 용담서사 터가 현재의 용담정 자리인지, 와룡암 터가 현재의 용담정 자리인지 정확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수운 대신사의 득도 장소인 현재의 용담정이 용담서사龍潭書社자리인지, 와룡암臥龍庵자리인지 지금으로서는 구분하기는 어렵다. 교중 동학·천도교 연구에 평생을 바치신 표영삼 선생과 윤석산 교수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표영삼 선생의 의견은 수운 대신사의 득도 장소가 현재의 용담정 자리 즉 용담서사 자리가 아니고, 와룡암 자리에 무게를 둔다. 그 이유는 수운 대신사께서 용담서사 즉 학문을 공부했던 건물이 아니라, 가족과 생활했던 건물 즉 와룡암터에  근암공이 새로 집을 지었던 것을 수운 대신사가 수리하여 살던 장소라는 것이다. 이는 용담유사 여러 곳에 득도 당시 가족이 지켜보았다는 대신사의 기록에서 근거를 찾는다. 



윤석산 교수의 의견은 와룡암과 용담서사 두 곳 모두 인정하고 있다. 수운 대신사의 득도 과정이 한 순간 이뤄진 것이 아니고, 수일을 경과하면서 지속되었던 것을 참고하면 가족과 생활했던 와룡암터 집과, 학문을 연구하고 경전을 쓰셨던  용담서사터 집, 두 곳에서 득도하였다는 추정이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두 장소인 와룡암터와 용담서사터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수운 대신사의 득도 장소인 역사적인 건물은 1863 12월 10일 대신사께서 관군에게 피체되어 이듬해 1864년 3월 10일 좌도난정율左道亂正律이라는‘도를 그릇되게 하고 바름을 어지럽게 하는 법률’ 즉 반역죄反逆罪로 대구 장대에서 순도殉道한 뒤, 살림집 다섯 칸인 와룡암터 집과 용담서사터 네 칸의 집은 돌보는 이가 없어 모두 무너지고 몰락되어 그 곳은 황폐한 터가 되었다.

 

그 후 조선왕조의 동학에 대한 가혹한 탄압에 50여년을 지나는 동안 관의 지목이 두려워 그 누구도 득도 장소이자 성지인 건물복구에 착수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4월 황해도 천도교 교역자 오응선과 교인 이계화 등이 21일 특별 기도를 마친 뒤에 한울님의 감응을 받아 경주 용담성지를 찾았으나, 건물은 흔적조차 없고 잡초만이 무성하여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오응선씨는 용담정자 재건을 결심하고 이계화씨와 함께 다시 백오일 기도를 단행하고, 용담정자를 착공하여 1914년 10월 15일에 준공을 하고 용담정龍潭亭이란 현판을 붙였다. 오늘날 용담정이란 건물의 이름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후 40여년이 지내는 동안 용담정은 다시 무너지고 몰락되니 인적마저 끊기게 되었다.

 

현재의 용담정 복원은 천도교 부인회 주최, 천도교 창도 1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서, 양이제와 권태화 두 할머니가 나서서 천도교인들의 성금을 모아 다시 용담정을 중창하고 1960년 6월 30일에 많은 교인들과 함께 낙성식을 봉행하였다. 


3. 와룡암터에 유적표지판 하나라도 세우자


천도교단에서 현재까지 수운 대신사 득도터인 와룡암 자리에는 복원건물은 고사하고 아무런 유적표지판도 세우지 않고 있다. 그 연유는 현재 용담정 건물과 대비되어 득도 장소에 대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역사는 분명 역사이다.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고자 역사를 바르게 전하지 않는다면 천사天師님을 어찌 대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수운 대신사님의 제자로서 부끄러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가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년, 동학농민혁명130년이다. 천도교단은 중지를 모아 와룡암 터에 유적표지판을 세울 것을 논의해야 된다. 와룡암터는 와룡암터대로, 현재의 용담정은 용담정대로 그 역사와 가치가 있다. 지난 와룡암 역사가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무슨 유적표지판이냐고 반대의 의견들도 많을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의 용담정 자리가 지난 원적암과 와룡암 자리였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 용담정 연혁을 역사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현재의 용담정 자리는 지난 용담서사 자리였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용담서사 자리가 지난 원적암과 와룡암 자리였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용담서사 자리와 원적암과 와룡암 자리는 분명 다른 장소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끝으로 필자는 와룡암 자리에 유적표지판이 세워지지 않더라도 이렇게 글을 써서 역사에 남길 생각이다. 와룡암 터와 용담서사 터는 현재 용담정으로 대변 되지만 두 성지는 후천 5만년 길이 전해질 다시개벽 즉 주문呪文과 영부靈符는 물론 시천주侍天主·인시천人是天·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압축되는 동학의 진리를 수운 대신사께서 한울님께 받으셨고, 또한 대각을 이루신 곳이다. 그만큼 현재 용담정과 과거 와룡암은 세계인류역사에 길이 빛날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번 글이 ‘와룡암 터를 알리는 공개적인 두 번째 글이다.’는 것을 밝히면서 용담정 순례에 대한 글을 마친다.


4. 수운 최제우 대신사 십상도(일생을 열 개의 그림으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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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대신사 출세시 구미산이 사흘동안 진동하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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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팔로, 전국을 장삿길과 유람을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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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굴에서 49일 특별기도를 행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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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사 용담 와룡암터 집에서 수행하시며, 가족과 함께 지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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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사 용담에서 득도, 가족들이 놀라 어쩔 줄 몰라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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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몇 명만 모여도 동학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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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사 남원 은적암에서 칼노래와 칼춤을 추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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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사, 천도·동학이 세계로 향할 것이고, 해월신사께서 그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 내다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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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사 해월신사에게 도통을 전수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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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 대신사 참형의 순도를 앞두고 유시를 읊으시며, 마지막 청수를 봉전하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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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윤영(천도교연원회 직접도훈, 동학혁명백주년기념관장)

그림 : 박홍규 작 2015년, 송암 이윤영 저술 동학이야기 ‘만고풍상겪은손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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